노무현 대통령이 신년 TV연설에서 양극화 해소의 시급성과 재원 마련의 어려움을 토로한 이후 증세 논란이 어지럽게 전개돼 국민들의 피곤함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정부는 “증세를 얘기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재원조달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라는 알쏭달쏭한 말로 문제를 피해간다. 한 마디로 요령부득이다.
무리를 해서라도 세금을 더 걷겠다는 건지, 그저 운을 띄워 봤다는 건지, 더 걷는다면 어느 부분을 건드리겠다는 건지, 또 언제부터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에 대한 명확한 입장 없이 싸움판만 벌여 놓았다는 느낌을 준다.
청와대의 태도부터 모호하니 관료들의 무사안일만 탓하기도 어렵다. “양극화 문제가 심각하니 사회적 논의를 해보자는 것인데 세금 올리기에만 초점이 맞춰진 것은 잘못”이라거나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필요성을 충분히 논의한 후에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올바른 수순”이라는 말이 도대체 무슨 얘기인가. 찬반 양론이 박 터지게 싸워 지칠 때쯤 숨겨둔 카드를 밀어붙이겠다는 의도에 다름 아니다.
현실을 보면 이런 의구심이 더욱 짙어진다. 노 대통령이 “기존 예산을 아껴쓰고 (세출)구조조정을 하는 걸로는 한계가 있으니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 다음 날부터 정부의 납득할 수 없는 행태가 이어졌다.
국세청은 세정의 효율성보다 타당성을 중시한다며 ‘표본 세무조사’란 이름 아래 매출 300억원 이상 대기업 116곳을 본보기로 삼았다. 재정경제부는 세정을 합리화한다며 비과세 및 감면 160개 조항 중 120개를 폐지 축소하겠다고 칼을 빼들었다.
재경부 차관은 국회에서 폐기된 소주세율 인상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말해 물의를 빚고, 여당 의원들은 경쟁하듯 소득세율 및 법인세율을 올리는 법안을 제출했다.
이런 작업들이 강행된다면 국민들의 세부담은 연간 20조원 가까이 늘어나게 되고 조세부담률 역시 현재보다 2~3% 오른다. 이런 엄청난 일이 노 대통령이 말한 ‘책임있게 미래를 대비하는 자세’라면 정부는 더 이상 사실을 호도해선 안 된다. 역사와 미래는 이 정권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토록 역사적 소명감에 투철하다면 정권의 명운을 걸고 생각을 밝히는 게 옳다. 복지지출 비중과 재정규모를 선진국과 비교하면서, 증세는 아니라고 말하는 정부는 분열증 환자라는 비판을 받아도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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