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주 테러 위협국가에 핵 공격을 할 수 있다고 선언, 세계를 놀라게 했다. 미국이 테러와 대량살상무기 위협을 제거한다며 잇따라 전쟁을 벌이는 것을 지켜보았지만, 테러 위협이 있다고 핵 공격까지 감행하는 것은 지금껏 상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당장 테러 지원국가로 지목된 데다가 핵개발 의혹까지 받고 있는 이란을 겨냥했다는 풀이와 함께 핵 보유국 사이에 적용되던 핵 억지력(Deterrence) 개념자체가 바뀌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프랑스는 미국 러시아 중국에 이어 세계 4위의 핵 강대국이다. 프랑스 핵전력의 주축은 전략 핵잠수함 4척으로, 1만 톤 크기 잠수함은 사정거리 4,500km에 핵탄두 6개를 장착한 탄도미사일 16기를 싣고 있다.
이것만으로 웬만한 크기의 나라는 초토화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최대 200기의 핵미사일 공격을 할 수 있는 전략폭격기 60대를 갖고 있다. 과거 소련과 바르샤바 조약군의 침공을 저지할 목적으로 배치한 중거리 핵미사일(IRBM)은 1996년 모두 퇴역, 해상과 공중 전력만으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프랑스의 강력한 핵 전력은 1960년대 드골 대통령이 미국과 나토 동맹에서 자유로운 독자 안보노선을 추구한 것이 바탕이다. 드골은 재래식 전력이 우세한 소련이 서유럽을 침공할 경우, 미국이 자국에 대한 핵 보복을 무릅쓰고 핵무기로 저지할 가능성이 낮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독자적 핵 억지력을 뜻하는 타격 전력(Force de frappe) 확보를 추진했다. 그는 “러시아인 8,000만 명을 죽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지면, 프랑스인 8억 명을 죽일 힘이 있더라도 쉽게 공격해 오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드골의 냉전적 언사와 핵 전략에는 2차 대전으로 추락한 국가적 자존심과 위상을 회복하려는 정치 거인의 야망이 크게 작용했다. 시라크 대통령의 핵 억지개념 확대도 이런 차원에서 보는 시각이 많다. 냉전 종식에 따라 핵 전력유지에 필요한 국민 지지가 줄어드는 상황을 타개, 핵 강대국 지위를 지키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또 드골이 그랬듯이 개인적 권위를 높이려는 속셈이라는 풀이다. 기실 보잘것없는 불량국가보다 강대국과 정치 지도자들의 이기심이 세상을 더 살벌하게 만든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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