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1
대학 졸업을 1개월 앞둔 1987년 1월 룸펜처럼 집에서 뒹굴고 있는데 친한 대학 후배로부터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심심하던 터에 잘 됐다 싶어 학교로 갔다.
찬 바람이 바싹 마른 잎을 굴리고 있는 고갯길을 올라가 내가 4년 동안 공부했던 건물로 가니 그 앞에서 후배가 반갑게 웃었다. 우리는 점심시간이 끝나 텅 빈 식당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한동안 말없이 커피를 마시던 후배가 먼저 말을 꺼냈다.
“형, 지금의 학생운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학생운동은 네 전공 아니냐. 그걸 왜 나한테 묻냐.”
“너무 폭력적이고 단편적이지 않아요.”
“….”
“지금처럼 단순히 집회나 가두투쟁을 하면서 독재를 부수자고 외치면 뭐 합니까. 이것으로 우리사회를 민주화할 수 있을까요.”
“독재를 타도하려면 그 방법 외에 다른 것이 있냐.”
“저는 시민운동을 하려고 해요.”
“시민운동? 그게 뭔데.”
“합법적인 틀 내에서 환경 같은 작고 다양한 문제점을 얘기하고 이에 대한 대안도 제시하면 세상이 조금씩 변하지 않을까요.”
“그것 가지고 독재가 없어지겠냐. 너무 순진한 얘기 같다. ”
우리 얘기는 이런 식으로 계속 맴돌다 끝났다. 시민운동은 87년 이렇게 우리 앞에 갑자기 다가왔다. 당시 나로서는 너무 황당한 얘기라 그냥 흘려 들었다. 그리고 나는 군대를 마친 뒤 기자가 됐고 후배는 1년 후 졸업을 하고 시민단체를 만들었다.
지금 곰곰이 되돌아보면 그 후배의 말이 100%는 아니더라도 90% 이상 옳았다. 독재가 희미한 기억이 돼버린 지금은 더욱 그렇다.
이들은 끊임없는 문제제기를 통해 우리나라를 다원적 민주사회로 변화시켰다. 일찍이 공해문제를 제기했고 선거부정을 폭로했다. 여성과 외국인노동자 차별, 유해식품 문제도 이들에 의해 우리 앞에 사회적 이슈로 다가 왔다.
이들의 운동이 문제제기 중심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옳은 지적이다. 그러나 문제제기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시민운동 참여자의 숫자가 적고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을 고려할 때 명쾌한 대안까지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에피소드 2
◆대통령= 국가 원수이며 행정부의 수반(헌법 요약).
◆국가인권위원회= 개인의 기본인권 보호와 인권 수준 향상을 위해 만들어진 독립 국가기구(국가인권위원회법 요약).
누구나 알 듯 대통령은 정부를 대표한다. 또 인권위는 ‘광의의 정부’에 속하다. 그런데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가 정책생산이다. 정책은 보통 우리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이견을 수렴해 가장 좋은 수단을 개발하는 방식으로 도출된다. 이것이 문제제기면 충분한 시민단체와 다른 점이다.
이제 노무현 대통령이 18일 한 신년연설로 시선을 돌려보자. 대통령은 “양극화 해소를 위해 많은 재원이 필요한데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그냥 문제제기다.
어떻게 재원을 만들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정책이 없다. 시민단체처럼 문제만 제기하니 많은 시민단체들의 문제제기가 그렇듯 논란만 재생산했다. 왜 온 정부의 역량을 모아 재원 대책을 만든 뒤 이를 발표하지 않았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증세를 거론해 표를 깎아 먹지 않기 위해서’라는 일부의 지적이 사실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인권위의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은 ‘조정의 포기’라는 방식으로 정부로서의 역할을 방기했다. 노동계나 진보진영이 요구하는 내용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정책이 아니다.
이를 반대하는 사람이 상당수일 때는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결국 인권위는 시민단체와 다른 것이 뭐냐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또 장관들이 모여 NAP 가운데 수용할 내용을 다시 취사선택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은호 사회부 차장대우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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