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했던 로마제국이 몰락의 길로 접어든 시기는 50년 동안 26명의 황제가 바뀌고 그 중 1명을 제외한 모두가 살해당하는 ‘군인황제(서기 192년~305년)’ 시대였다.
마지막 군인황제인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개혁적 인물이었지만, 제국을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혀 무리한 정책들을 쏟아냈다. 황제 1명, 부황제 2명을 추가로 임명해 4명의 황제가 제국을 분할, 통치하도록 했고 12년 재임기간에 30만이던 군대를 60만명으로 증강했다.
▦ 이러한 ‘큰 정부’ 덕분에 제국은 안정을 찾는 듯 했으나 비대해진 정부를 지탱할 재원이 문제였다. 그는 세제개혁을 통해 징세업무를 중앙정부로 통합하고 세금을 수익에 관계없이 황제가 매년 정해 부과했으며 새로운 세금을 도입했다.
갑자기 세금벼락이 쏟아지자 견디지 못한 농민은 토지를, 상인들은 장사를 버리고 달아나는 바람에 경제활동이 마비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 황제는 직업에 대한 세습제를 도입하고, 상거래가 막혀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자 가격을 강제로 정지시키는 칙령을 내렸다. 그 결과는 ‘로마를 망하게 한 황제’라는 낙인이다.
▦ 노무현 대통령이 신년연설에서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재원을 마련하는 ‘근본적 해결책’을 언급하면서 세금문제가 뜨거운 이슈로 등장했다. 정부는 증세를 부인하며 다양한 재원마련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적자국채까지 발행하며 지출을 계속 늘리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어떤 식으로든 세수를 늘려야 하고 그 부담이 국민에게 부가될 것은 각오해야 한다.
▦ 세금인상은 정치인에게 명운을 걸어야 하는 도박이다. 1988년 캐나다 총선에서 대승한 보수당의 멀루니 총리는 만성적 재정적자를 타개하기 위해 연방부가세를 도입했다가 1993년 총선에서는 2석에 그치는 참패를 했다.
하지만 부가세 덕분에 캐나다 재정은 흑자로 돌아섰고, 그 영광은 정적인 자유당의 장기집권으로 돌아갔다. 노 대통령은 최근 이 일화를 자주 거론하면서 ‘미래를 내다보는 책임있는 선택’을 자주 언급했다고 한다.
지방선거를 코 앞에 두고 대통령이 폭발성이 강한 세금 문제를 끄집어낸 것이 과연 나를 버리고 국가를 살리려는 결단인지, 고도의 선거전략인지 해석이 분분하다. 확실한 것은 대통령이 강심장도 보통 강심장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배정근 논설위원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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