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경찰 선전포고 핵심은 "수사권 양보 못한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경찰 선전포고 핵심은 "수사권 양보 못한다"

입력
2006.01.24 09:11
0 0

경찰이 정면승부를 택했다. 최광식 경찰청 차장은 23일 제복까지 벗고 경찰청장 직무대행이 아닌 한 사람의 경찰임을 분명히 밝히고 ‘경찰 명예회복 선언’을 했다.

경찰총장이 없는 상황에서 사실상 경찰을 대표하고 있는 최고 지휘권자가 ‘계급장을 떼고’도전장을 던진 셈이다. 총수의 날선 칼끝은 검찰을 겨냥하고 있고 점령할 고지는 경찰의 염원인 수사권 쟁취다.

경찰이, 그것도 경찰 수뇌부가 검찰과의 일전에서 국지전이 아닌 전면전을 감행한 배경은 무엇일까? 표면적으론 검찰이 법조 브로커 윤상림 사건과 관련해 최 차장을 비롯한 경찰 지휘부를 흠집 내고 있다는 의혹과 연이은 강희도 경위의 자살 등으로 동요하고 있는 경찰의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그러나 핵심은 검ㆍ경 수사권 조정 싸움에서 더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것이다.

최 차장은 이날 오후 기자 브리핑에서 “경찰 동요를 막기 위해 사퇴는 없다”며 자진 사퇴할 것이라는 일각의 예상을 뒤엎었다. 대신 “국가인권위원회 제소와 형사 고소ㆍ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등 가능한 모든 법적 대응을 할 것”과 “진실을 밝히기 위해 언제라도 검찰에 출석할 것”을 당당히 밝혔다. 떳떳한 만큼 더 이상 숨죽이고 있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사실 검찰이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윤씨 사건은 경찰에겐 줄곧 아킬레스건이었다. 경찰은 윤씨 사건과 관련해 경찰 지휘부의 이름이 검찰을 통해 시시때때로 오르내리는 것에 대해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하지만 철저히 정면대응은 삼갔다.

특유의 입담을 과시하며 검찰 공격수를 자임한 허준영 전 경찰청장마저도 “일일이 대응할 가치가 없다”며 언급을 피해갔다. 오히려 내부감찰 등을 통해 경찰 조직을 점검했다.

지난해 초부터 갈등을 빚어왔던 검ㆍ경 수사권조정 문제와 관련해서도 일선서나 지방에서 검찰을 에둘러 공격하고 중앙에선 이를 수습하던 모습이었다.

검찰의 형집행장 남발에 대한 인권위 제소, 검찰 직수사건(검찰이 직접 수사한 사건)의 피의자 호송 거부 등은 모두 지방에서 이뤄졌다. 이는 경찰의 입장을 알리되 정면승부 또는 확전을 피하겠다는 경찰 수뇌부의 판단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다음달 초 검ㆍ경 수사권조정의 최종안 확정을 앞두고 경찰 수장의 실명이 거론되는 상황 앞에서는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이 선 것으로 보인다.

최 차장은 “(대응하는 것은) 경찰 흠집내기에 이용당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온갖 수모를 참아왔지만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행태를 납득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 차장의 강경대응 뿐 아니라 강 경위 자살 이후 경찰의 움직임은 중앙인 본청을 중심으로 검찰을 향해 잔뜩 날을 벼리고 있는 상황이다.

경찰청의 한 고위간부는 “검찰 고위 간부도 윤씨와 관계가 있다”는 추측성 발언을 해 검찰을 직접 공격하고 나섰다. 더구나 최 차장 등 검찰 공격의 총대를 메고 있는 이들 대다수가 경찰 내부에서 수사권 조정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검찰은 그러나 윤씨 사건과 수사권 조정을 결부시키는 시각을 거부한다. 이는 경찰의 오랜 피해의식이나 과민반응 때문이라는 판단이다.

검찰은 이날도 “지금까지 법 절차에 따라 원칙대로 수사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는 통상적인 입장을 되풀이했다. 오히려 검찰 일각에서는 최 차장의 이날 입장 표명으로 윤씨를 둘러싼 개인 비리 문제가 경찰과 검찰 등 조직 전체의 문제로 비화해 윤씨 사건이 정치적 성격을 띠게 되는 것을 우려하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김지성 기자 jskim@hk.co.kr

■ 검찰 "거리낄 것 없어…할테면 해보라"

검찰은 ‘할테면 해보라’는 반응이다. 원칙에 따라 사건을 처리하고 있는 만큼 전혀 거리낄 게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검찰 일각에서는 “이번 기회에 철저히 수사해 표적 수사가 아니라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강경 기류도 감지된다.

윤상림씨 사건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23일 최광식 경찰청 차장 기자회견 직후 “법적 대응 운운하는 데 무슨 근거로 얘기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대응을 하겠다면 검찰도 마땅히 응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강희도 경위의 죽음은 애석하지만 그렇다고 사건을 덮을 의향은 전혀 없다”며 “우리는 우리대로 원칙에 따라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차장이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을 언급한 부분에 대해서도 “검찰이 언론에 의도적으로 흘려준 사실이 전혀 없다”고 맞받았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경찰이 자신들의 허물을 감추기 위해 분위기를 다른 방향으로 몰고 가고 있다”며 “최 차장 본인이 소환을 원하는 만큼 신속히 소환 조사해 혐의를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22일 경찰청 간부가 “내 추측이긴 하지만 검찰 인사도 윤상림씨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다른 검사는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추측’을 근거로 얘기하는 건 수준 이하의 대응”이라며 “명예훼손 등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역공을 펼쳤다. 또 “검찰이 소환키로 한 것은 어느 정도 혐의가 드러났기 때문일 것”이라며 “최 차장의 발언은 적반하장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윤씨 수사에서 드러난 인사 가운데 경찰은 여럿인 반면 현직 검찰 인사는 없다는 게 수사팀의 부담이다. 경찰이나 정치권의 주장대로 자칫 ‘제 식구 봐주기’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씨를 수사 중인 김경수 특수2부장은 “우리는 철저히 계좌추적에서 나온 결과만을 바탕으로 수사해 나가고 있다”며 “편파 수사니, 표적 수사니 하는 것들은 있을 수 없다”고 못박았다.

김지성 기자 jskim@hk.co.kr

■ 경찰 "최차장 정면대응은 적절한 대처"

브로커 윤상림 사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던 최광식 경찰청 차장이 23일 오후 당초 예상과는 달리 사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일선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특히 최 차장의 정면대응 방침이 전해지자 ‘뒤늦은 감은 있지만 적절한 대처’라며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서울 모 경찰서 A경장은 “최 차장이 사퇴했더라면 경찰 전체가 비리 조직으로 매도될 뻔 했다”며 “최 차장은 흔들리지 말고 수장이 없는 경찰 조직을 잘 추스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B경사는 “검찰은 자신들의 치부는 내버려 둔 채 경찰 비리 정보만 언론에 흘리고 있다”며 “최 차장이 지금이라도 제동을 거는 건 당연한 조치”라고 말했다. C경감은 “검찰이 최 차장을 물고 늘어지는 것은 결국 허준영 청장 사퇴 이후 수장을 잃은 경찰을 공중분해 하려는 수작”이라며 “최 차장이 사퇴하지 않고 정면 대응하기로 한 것은 경찰 전체의 명예가 걸린 일”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D경위는 “만약에 내가 청장이었다면 각 경찰서에 검찰 비리 접수처를 신설하고 싶을 정도였다”며 “경찰 조직을 와해하려는 검찰과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고 성토했다.

일부에서는 윤상림 사건을 검ㆍ경ㆍ언 금품 로비를 벌인 브로커 홍모씨 사건과 비교해 가며 검찰 견제 세력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E경위는 “경찰 수사로 연루 검사가 사건 초기에 발표됐던 브로커 홍모씨 사건과는 달리 윤상림 사건은 검찰이 맘대로 연루자를 조정할 수 있다”며 “윤상림 리스트에 현직 검사가 하나도 없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고 성토했다. 그는 또 “최 차장의 잔류를 계기로 경찰 조직을 재정비하고 정부에 경찰이 검찰을 조사할 수 있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최 차장의 수행비서 강희도 경위의 자살을 의식한 듯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F경사는 “최 차장이 결백했다면 재빨리 대응했어야 했다”며 “뒤늦은 대처로 아까운 생명만 하나 잃은 셈”이라고 꼬집었다.

안형영 기자 prometheu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