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는 코카콜라, 플레이보이와 함께 미국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핵심 ‘문화 코드’다. 맥도날드의 빅맥 햄버거 가격을 기준으로 하는 ‘빅맥 지수’가 세계 각국의 물가 수준을 비교하는 기준이 된 것만 봐도 햄버거의 위력을 짐작키 어렵지 않다.
햄버거가 우리나라에 본격 상륙한 것은 1980년대 중반 무렵이다. 맥도날드, 버거킹, 웬디스 등 미국계 햄버거 전문점이 국내 외식시장을 공략하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하지만 3, 4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웰빙 바람 탓에 햄버거는 대표적인 ‘정크 푸드’(쓰레기 음식) 신세로 전락했다. 대부분의 패스트푸드가 비만 등 각종 성인병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브랜드의 국내시장 철수 등에도 불구하고 한국식 메뉴 개발이라는 미국계 업체의 ‘현지화’ 전략 앞에 한국인들의 입맛은 여전히 무너지고 있고, 그 확산 추세 또한 변하지 않은게 엄연한 현실이다.
권태신 재정경제부 차관이 “집단이기주의가 스크린쿼터에도 있다”는 발언으로 영화계를 뒤집어놓았다. 국가경제 운용을 담당하는 고위 관료로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스크린쿼터 문제로 인해 진전을 보지 못하는데 대해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면 권 차관의 발언도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전체 국민 4,800만명에 영화인 1만~2만명, 우리나라 총수출 2,800억 달러에 영화 수입 1억 달러’라는 통계수치를 제시한 것도 그런 차원이라 짐작된다. 즉, 얼마 안되는 규모의 국내 영화시장 개방 확대 문제에 매달려 국가 경제를 좌우하는 수출이 위협받아서야 되느냐는 논리인 셈이다.
하지만 권 차관은 스크린쿼터 문제를 너무 경제 중심적으로, 그것도 미국쪽 입장에 편향된 듯한 논리로 다가가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우를 범했다.
직설적 화법을 통해 스크린쿼터 축소에 반대하는 영화인들을 대중과 괴리시키려는, 의도적인 발언이었다면 더더욱 그것은 관료로서의 자세가 아니다. 한미간 경제 문제가 급하다면 경제인 대신 영화인들을 앉혀놓고 설득하는 자세를 보이는게 옳았다.
햄버거 등 ‘정크 푸드’가 원산지도 모르는 싸구려 쇠고기로 우리 아이들의 건강을 갉아먹을 때 국민건강을 걱정해준 관료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 결과는 어떤가.
패스트푸드 배척 분위기가 형성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여전히 젊은 층은 햄버거를 찾는다. 햄버거가 건강에 좋지 않다는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입에 박인 인 때문에 버릇처럼 무심코 먹는다. 그런 구조를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진다.
영화는 어떤가. 폭력 섹스 마약이 넘치고, 미국인을 자유 평화 정의 등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하는 십자군처럼 묘사하고, 아랍인과 이슬람교는 테러분자이거나 테러를 조종하는 종교쯤으로 치부하는 미국 영화에 우리의 의식은 멍들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눈과 발은 미국 영화를 쫓는다. 그만큼 미국 영화는 자극적이며, 중독성이 강하다.
우리의 세계관과 가치관이 부지불식간 미국쪽에 경도되고, ‘람보’ 문화에 무감각해지는데도 관료들은 균형을 잡아주려는 노력은커녕 침묵했다.
스크린쿼터 축소를 반대하는 영화인들의 목소리는 이런 불균형 속에서 최소한의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이다. 물론 경직된 측면도 있다. 그렇다고 ‘집단이기주의’로 매도될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관료라면, 경제지표를 꺼내기 전에, 집단이기주의라고 몰아붙이기 전에, 한국 영화를 어떻게 발전시킬 지에 대한 진지한 성
찰과 대안을 제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게 순서다. 햄버거가 몸에 해롭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황상진 문화스포츠부 부장직대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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