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물 브로커 윤상림(54)씨 사건이 현직 경찰청 차장 수행비서의 죽음까지 몰고 옴에 따라 윤씨의 실체에 대한 의혹이 점점 커지고 있다. 특히 시간이 지날수록 정치권, 검찰, 법원, 경찰 등을 아우르는 윤상림 커넥션이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고 있어 대형비리 사건으로 비화할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이번 사건을 ‘윤상림 게이트’로 규정한 한나라당 진상조사특별위원회는 22일 보도자료를 내고 국정조사 필요성을 주장했다.
로비스트인가, 사기꾼인가
윤씨와 유력 인사들의 돈거래가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아직 윤씨의 의문스러운 행적은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윤씨가 2개월이 지나도록 입을 굳게 다물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계좌추적에 의존해 윤씨 커넥션을 파헤친다는 방침이나, 아직은 뚜렷한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윤씨와 돈거래를 한 당사자들은 단순한 채무관계라고 발뺌하기 일쑤고, 그나마도 윤씨에게 돈을 받은 사람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그의 사기꾼 기질에도 불구하고 배후에 뭔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대목이다.
지금까지 그와 친분을 가진 것으로 확인된 인사의 범위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는 이해찬 국무총리가 의원일 때 골프 모임을 가지는 등 힘 있는 기관의 유력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어울렸다. 전병헌 열린우리당 의원으로부터도 인테리어 공사비 명목 등으로 5,000만원을 받았다. 심지어 각종 게이트의 주역으로 이름이 알려진 진승현 MCI코리아 부회장, 송재빈 전 TPI 회장 등과도 어울렸다가 나중에는 이들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기까지 했다. 이밖에 최광식 경찰청 차장, 임재식 전북경찰청장, 최기문 전 경찰청장 등 경찰 고위간부, 검사장 출신 변호사, 현직 판사도 그의 교제 범위 안에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전남 보성 출신의 윤씨는 고교도 마치지 못한 채 서울에 올라와 1970대 초반 세운상가에서 기름장사로 사회 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엘리트 코스와는 거리가 멀었던 윤씨는 유력 인사들과의 친분을 위해 술자리와 골프 모임을 따라다니면서 ‘물량 공세’를 퍼부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한 검찰 중견 간부가 상을 당하자 빈소 마련부터 장지까지 장례 절차 일체를 대신 준비해준 적도 있다. 윤씨가 안면도의 모 휴양시설에서 법조인, 기업인, 정치인 등과 정기적 모임을 가졌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그는 여러 사람 앞에서 고위 인사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인맥을 과시하기도 했다. 수사팀 관계자는 “유력 인사의 전화번호가 담긴 수첩을 꺼내 전화한 뒤 ‘형님 그 자식 나쁜 놈이야, 죽여버려’라고 말하면 상대방이 자연스럽게 윤씨의 배경에 주눅이 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고관들이 윤씨에게 돈을 준 까닭은
브로커라면 청탁을 성사시키기 위해 힘 있는 기관의 유력인사에게 돈을 줘야 한다는 것이 일반인의 상식이다. 그러나 그는 거꾸로 돈을 받았다. 현직 경찰청 차장과 현직 판사들이 돈을 빌려주고 못 받았고, 고검장과 지검장을 지낸 변호사들, 여당의 대변인과 공기업 사장도 그에게 거액을 건넸다.
검찰의 이런 설명을 종합하면 윤씨와 돈거래를 했던 유력 인사들 역시 윤씨에게 피해를 당한 사람들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실제로 경기 하남 아파트 분양 사업 등에 개입했던 그가 유력 인사들을 상대로 “투자하면 돈을 불려서 갚겠다”며 돈을 요구한 흔적도 드러났다. 윤영호 전 마사회장의 경우 총선 자금을 윤씨에게 빌렸다가 고율의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윤씨에게 내내 끌려다녔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단순한 채권ㆍ채무 관계라고 주장하면서도 윤씨를 상대로 적극적인 회수 요구를 하지 않은 것은 여전히 의문을 키우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검찰 주변에서는 윤씨가 약점을 잡고 돈을 요구하자 입막음용으로 돈을 줬거나 이들 사이에서도 인사청탁 등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은 더 나아가 “윤씨 뒤를 봐주는 정치적 배후가 있을 것”이라고 의혹에 불을 지피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이 윤씨의 청와대 출입기록 제출을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어 조만간 청와대 인사 관련설이 터져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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