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전투 중 달아났다는 거짓 혐의로 억울하게 즉결처형된 고 허지홍(당시 28살) 대위의 유족에게 국가가 거액을 배상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한명수 부장판사)는 22일 허씨의 미망인 박모(77)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는 원고측에 1억7,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남편의 생사 여부를 통지 받지 못한 채 아들을 양육해 왔고, 국가유공자법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 점, ‘도망친 군인’의 유족이라는 불이익을 받아온 점 등을 감안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로 비슷한 처지인 상당수 군인 유족들이 국가배상을 청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전쟁 때 육군 모 부대 대대장이었던 허씨는 1950년 8월 같은 부대 연대장에 의해 작전 실패 등을 이유로 즉결처분됐다. 당시 연대장은 정당한 사유 없이 행한 즉결처분에 대한 책임을 피하려고 허씨가 공격 명령을 받고도 부대원과 함께 달아났다고 꾸몄다. 연대장은 허씨가 군사재판을 거쳐 사형된 것처럼 고등군법회의 판결문과 사형집행 기록 등을 위조했다.
전쟁 이후 ‘비겁자’ ‘반역자’라는 주위의 눈총을 받으며 지냈던 유족들은 1999년 의문사를 다룬 한 TV 프로그램을 시청한 후 ‘진실 찾기’에 나섰다. 국방부와 육군본부, 등을 오가며 허씨에 대한 자료를 수집했고, 허씨의 인사기록에 군사재판 판결 내용이 없는 사실을 확인했다.
여동생 덕수씨는 이를 토대로 2000년 법원에 재심을 청구, 2003년 말 수원지법은 “고등군법회의는 열리지 않았고, 판결문 등은 조작된 사실이 인정된다”고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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