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수도권 전철 종착역인 천안역. 방학 중이고 손님이 뜸한 평일 시간대인데도 떼를 지어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이용객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상당수가 가벼운 배낭을 멘 편한 복장의 노인들이다. 백발이 성성한 70대의 한 노인은 “용돈 1만원으로 독립기념관을 구경하고, 점심은 병천순대국밥으로 즐기고, 온양에서 온천욕으로 하루를 마무리 한다”며 “1주일에 2,3번 천안을 찾는다”고 흡족해 했다.
충남 천안시는 '서울시 천안구'
수도권 전철 개통 1주년을 맞은 천안시는 최근 급격한 인구 증가와 잇따른 개발로 ‘서울시 천안구’로 불린다. 전철 개통으로 주민들의 생활 패턴은 180도 확 바뀌었다. 서울 등 수도권에 있는 문화 공간 및 대규모 쇼핑센터를 쉽게 나들이 삼아 찾기 일쑤다. 수도권까지의 출퇴근도 별로 부담스러워 하지 않는다. 천안시에 따르면 2004년 1월20일 수도권 전철 개통 이후 1년간 천안 시내를 지나는 직산, 성환, 두정, 천안역 등 4개역의 이용객이 1,000만 명을 넘어섰다.
교사 강모(여ㆍ45ㆍ천안시 두정동)씨는 “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지만 요즘에는 서울에서 공연하는 연극과 전시회 관람은 물론 쇼핑까지 하루에 끝낸다”고 말했다. 지난해 4월 수원에서 천안으로 이사해 온 천영성(41ㆍ회사원)씨는 “직장이 서울이지만 모임이나 회식에 종종 참석하고 전철 막차를 애용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중견 경찰 간부인 김모(46)씨는 지난해 3월 서울에서 천안으로 발령이 났지만 아침에 전철을 이용하니 1시간50분밖에 걸리지 않아 서울에서 출퇴근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루 1만2,000여명이 이용하는 천안시 두정역 주변의 나대지는 전철개통을 전후로 복합영화관 등 멀티플렉스가 들어서는 등 상가들로 가득 찼다. 50% 이상이 문을 닫았던 천안역 지하상가도 유동인구가 증가하면서 상인들의 얼굴이 활짝 폈다. 음식점들도 손님들이 30~40%이상 증가해 경기 불황 속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천안 시내 부동산중개업소의 한 직원은 “전철 개통 이후 평당 아파트값이 500만원에서 700만~750만원으로 50%정도 뛰었다”며 “상가 소유주들의 70%이상은 서울 등 외지인들”이라고 귀띔했다.
지역 대학에도 신입생들이 몰려들면서 위상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통학이 쉬워지면서 올 입시에서 이 지역 대학들의 경쟁률은 수직 상승했다. 천안대 이계영 대외협력실장은 “통학 여건이 나아지면서 올 입시에 성적이 우수한 지원자가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한숨 쉬는 버스업체, 하숙집들
반면 천안의 버스업체와 원룸 임대업자들은 이용자가 줄면서 울상을 짓고 있다. 지난해 시외버스 이용객은 2004년 보다 90만명이 줄었고 고속버스도 30만명이나 감소했다. 경기도내 한 대학에 다니고 있는 연모(24)씨는 “예전에는 학교에 가려면 시내버스와 직행버스를 갈아 타야 했는데 요즘은 전철 한번만 타면 그만”이라며 “전철 개통으로 교통비도 절감되고 하숙 고민도 사라졌다”고 말했다. 학생전용 통학버스 사정은 더 심하다. 서울과 수원 등 전철이 직통으로 연결되는 구간은 이용 학생이 90% 이상 줄어 노선 자체를 폐지해야 할 처지다.
안서동과 신부동 대학가 원룸촌은 30% 정도가 비면서 임대료가 큰 폭으로 내려가고 있다. 이 때문에 보증금 없이 임대료만 받는다는 현수막을 내 건 곳도 쉽게 볼 수 있다. 임대업자 이모(71)씨는 “4,000만원을 들여 건물 내ㆍ외부를 모두 개조했는데도 방 16개 가운데 빈방이 4개나 된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천안=이준호 기자 junh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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