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게 얼어 붙은 겨울 숲의 꿈결처럼 환상적인 풍경을 목판에 새긴 아름다운 그림책이다. 추운 겨울 밤, 온통 눈 천지에 사방은 쥐 죽은 듯 조용한데, 한참을 헤매다 찾아낸 토끼마저 놓치고 기운이 빠진 여우 앞에 신기한 숲이 펼쳐진다.
꽃이 흐드러진 들판에서 엄마 젖을 배불리 먹고 형제들과 신나게 뛰놀던 어린 시절의 행복한 기억이. 그건 환상이었을까. 정신을 차리고 숲을 빠져 나오자 새벽 들판 멀리 서 있는 다른 여우 한 마리. 짝을 만난 것이다. 곧 아기 여우가 태어나겠지.
책 속 그림 하나하나가 시리도록 아름답다. 칼끝으로 새긴 거친 듯 곱고 힘찬 듯 부드러운 선, 아득하게 가라앉는 까만 밤 하늘과 희다 못해 파르스름한 눈밭, 소복소복 눈을 이고 눈밭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운 나무….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어진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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