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테러조직 ‘알 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이 1년여 침묵을 깨고 육성으로 전세계에 건재를 알렸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19일(현지시간) 아랍권 위성TV 알자지라 방송이 공개한 “미국 본토에 대한 새로운 테러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녹음 테이프의 목소리가 빈 라덴의 육성이 맞다고 확인했다고 AP통신 등 외신들은 전했다.
이로써 2004년 12월27일 이라크인들에게 총선 보이콧을 촉구하는 음성 메시지 공개 이후 1년 넘게 오랜 공백으로 중병설, 심지어 사망설까지 나돌았던 빈 라덴의 생존이 확인됐다.
알자지라는 이번 메시지가 지난달 녹음됐다고 밝혔는데 여기서 빈 라덴은 지난해 11월 영국 언론이 폭로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알자지라 본사 폭격 계획을 언급, 적어도 지난해 연말까지 생존했음이 확실해졌다. 알 카에다는 그 동안 2인자 아이만 알 자와히리의 메시지를 통해 빈 라덴의 건재나 7ㆍ7 런던 테러를 자행했다고 주장해왔다.
빈 라덴은 미 본토에 대한 새로운 테러를 위협하는 한편 이라크에서의 미군 철수를 요구하며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재건을 위해 공정하고 장기적인 휴전을 꺼리지 않는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딕 체니 미 부통령은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휴전 제안에 대해 “진심이라기 보다는 계략으로 보인다”며 “성급히 결론을 내지 않겠다”고 말했다. 스콧 매클렐런 미 백악관 대변인은 “테러리스트와는 협상하지 않는다”고 일축하며 “(미국은) 알 카에다와 테러리스트를 패퇴시킬 때까지 테러와의 전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테러전문가들은 빈 라덴의 새 메시지가 미국에 대한 추가 테러공격의 신호라기보다는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도 살아남아 아직 건재함을 알리는 심리전으로 분석하고 있다.
미 정부의 대테러 관계자들은 알 카에다의 테러 공격이 임박했음을 나타내는 정보나 징후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로스앤젤레스 시 당국은 공항에 경비 인력을 추가 배치하는 등 공공시설에 대한 경계를 강화했으나, 국토안보부는 미 전역에 대한 테러 경계 수위를 현재의 황색 경보에서 상향 조정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도 “빈 라덴은 미국인들 뿐 아니라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아직 살아있고 세계 도처에서 실행되는 작전을 지휘하는 등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 통신은 이번 육성 공개가 미군이 알 자와히리를 겨냥해 파키스탄 북서부의 아프간 접경마을 다마돌라를 공중 폭격한 지 6일 만에 이뤄진 데 주목했다. 빈 라덴과 알 자와히리는 미국의 추적을 피해 아프간과 파키스탄의 국경 산악지대에 은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BBC방송 인터넷판은 미국이 빈 라덴의 건재 사실을 동맹국들에 ‘테러와의 전쟁’을 지속하는 명분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BBC는 테러 용의자에 대한 인권 침해, CIA 비밀수용소 운영, 파키스탄 공습에서 민간인 희생 등 적정 수위를 넘긴 ‘테러와의 전쟁’으로 궁지에 몰린 부시 대통령이 밑바닥까지 떨어진 지지도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문향란 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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