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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유럽 역사학 가면을 벗어라' 블랙 아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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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유럽 역사학 가면을 벗어라' 블랙 아테나

입력
2006.01.21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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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토스는 그리스 문명의 뿌리가 이집트와 오리엔트에 있다고 기록했다. 이집트가 그리스를 식민지화 하고 동방의 페니키아가 문자를 전해주면서 그리스에 국가가 세워지고 문화의 꽃이 폈다고 고백한 것이다. 헤로도토스 뿐 아니라 고대 그리스의 많은 역사가와 작가가 비슷한 이야기를 전했다.

그렇다면 지금도 서양인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아니다. 그들 대부분은 고대 그리스 문명을 그리스인이 스스로 또는 아리안족의 영향을 받아 형성했다고 생각한다.

마틴 버낼 미국 코넬대 명예교수의 ‘블랙 아테나’는 이에 대한 반기다. 도시 국가 아테네의 수호신 아테나를 흑인에서 백인으로 둔갑시킨 유럽 역사학의 집단적 조작을 고발한다.

헤로도토스와 마찬가지로 버낼은 이집트, 페니키아 문명이 그리스 문명보다 오래 됐고 그리스 문명의 스승이 됐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같은 견해가 적어도 19세기 전반까지 유럽에서 널리 받아들여졌으며 논란의 여지가 없는 상식이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에 대한 인식은 1820년대 메테르니히 반동 체제가 성립하면서 반전된다.유럽의 지배 계급은 1789년 일어난 프랑스 혁명을 목격하고 그 민중적 성격에 경악, 위기의 돌파구로 그리스 연구를 바탕으로 한 헬레니즘의 근대화를 제시한다. 이들은 구체적 방안으로 인간 중심의 휴머니즘과 고전 교육 및 철학 등을 강조했는데, 한 가지 걸림돌이 있었다.

유럽 문명의 근본이 돼야 할 그리스가 이집트와 페니키아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이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헤로도토스 등의 기록은 또 어찌할 것인가.

당시는 제국주의적 확장이 전성기를 맞던 때였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대한 제국주의적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인종주의가 필요하던 시기였다. 유럽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인종적으로 우수하기 때문인데, 그 뛰어난 유럽인의 문화적 조상인 그리스가 이집트 또는 페니키아 때문에 문명의 꽃을 피웠다는 사실을 용납할 수 없었다. 이런 인종주의의 과학적 외피가 된 것이 유럽의 실증사학이었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사료 비평이라는 근대적 기법을 통해 옛 기록을 신빙성이 없다고 규정하거나 신화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대신 입맛에 맞는 기록을 선택해 역사를 다시 만들었다.(책의 부제도 그래서 ‘날조된 고대 그리스 1785~1985’이다) 유럽의 근대 고전학은 과학과 진보라는 이름 아래 유럽을 집단 최면에 빠뜨렸다.

그 같은 유럽 식민주의와 인종주의가 낳은 결과가 1, 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학살이었다. 버낼이 “우리가 행한 모든 역사 연구와 역사 철학이 인종주의와 유럽 쇼비니즘에 물들었음을 인정해야 한다”“이 책의 정치적 목적은 유럽의 문화적 오만을 줄이는 것이다”고 말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이 책이 19년 전 미국에서 출판됐을 때, 서양 역사학계가 발칵 뒤집어지고 수많은 논쟁이 야기된 이유도 서양 고전 문명의 뿌리를 흔들었기 때문이다.

책은 모두 4권으로 예정돼 있다. 미국에서는 2권까지 나왔고 나머지 두 권은 저자가 집필 중이다. 이번에 번역된 한국어판은 제1권이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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