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 하여 우리 문단의 한 우람한 맥이 있게 한 문학평론가 백낙청(68ㆍ사진)씨가 평론집 ‘통일시대 한국문학의 보람’(창비)을 펴냈다. 1990년 ‘민족문학의 새 단계’이후 15년 만이다. 1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교동 창비의 ‘서교연구소’에서 그는 한국 문학의 오늘과 내일을 이야기했다.
책 제목의 사연이 궁금했다. 그는 “어떤 의미에서 통일시대는 이미 시작됐습니다”라고 담담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말했다. ‘6ㆍ15 공동선언’ 이후 달라진 남북관계의 지평을 염두에 둔 말이다. 거기에 ‘보람’이라는 단어를 단 데 대해 그는 두 가지 뜻을 전했다.
“통일시대 한국 문학이 보람 있게 할 수 있는 일감이 있다는 말이고, 오늘의 한국 문학의 보람을 느낀다는 말입니다.”
‘위기’라는 말이 더 친숙한 때에 ‘보람’이라니. 그는 “우리 문학에 불만도 있고 본격문학이 잘 읽히지 않는 것도 사실이지만, 아직 활력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민족문학론의 개념은 매우 포괄적인 것이며 넓고 긍정적으로 봐야 합니다. 요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그 소재나 주제로 보면 분단 체제 극복에 기여하는 문학이라고 보기 힘들지 모르지만 나는 그 북적대는 모습에서 통일시대를 위한 훈련의 풍경을 봅니다.”
이번 책에는 그가 각종 매체에 발표한 글과 토론원고 등 20편이 실렸다. 그의 민족문학론에 대한 이론적 검토의 글과 신경숙, 배수아 등 작가에 대한 비평글도 포함됐다. 특히 후배 비평가들이 제기해온 이런저런 비판, 곧 민족문학(창비) 진영의 폐쇄적 독법에 대한 노 평론가의 반론으로 읽히는 글 ‘창비적 독법과 나의 소설읽기’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느 집단이나 공유하는 가치관은 있고 그 자체가 잘못은 아니지만, 가치관이 경직되게 적용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창비라고 해서 그런 폐해가 없지는 않겠지만, 지금 문단이 지닌 ‘창비적 독법’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다면 그것은 그릇된 이해일 것입니다.”
그의 화법은 차분했으나 그 의미는 시종 뜨거웠다. 문학에 대한 애정이 그러했고, 시대에 대한 희망이 그러했다. 무엇보다 그는 열정적인 현역 평론가이고, 그 사실을 만족스러워 하는듯 했다.
“평론가는 아주 괜찮은 겁니다. 기본적으로 독자지만 작가처럼 글을 쓰는 권한까지 가졌지요. 독자와 작가의 좋은 점을 혼자 지닌 존재예요.” 그의 이 역설(逆說)은, 오래 건재함으로써 좁게는 평단, 궁극적으로는 우리 문학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겠다는 다짐으로 들렸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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