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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음식 - 박재은의 음식 이야기 - 산… 봄…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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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음식 - 박재은의 음식 이야기 - 산… 봄… 맛…

입력
2006.01.2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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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을 하는 이들이나 불자(佛者)들은 입산(入山)이라는 말을 쓴다. 입산은 즉, 산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세인(世人)들은 등산(登山)이라는 말을 쓴다. 산은 크디 큰 자연인데, 감히 어디를 오른다고 하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 주말, 진안의 마이산에 다녀왔다. 주차장에 차를 두고 매표소를 지나 걸어 들어간 지 몇 분 채 되지 않아 ‘등산로 입구’라 쓰인 팻말을 봤다. 아스팔트길도 싫고, 등산로라 꺾이는 길이 더 한적할 것 같아서 남편과 나는 지체 없이 방향을 틀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평소 산행을 즐길뿐더러 암벽 등반을 배우는 등 가족들 사이에서는 ‘산 다람쥐’라는 별명까지 듣는 사람이다. 아마추어치고는 산을 꽤 잘 탄다고 자신하던 사람이었다는 말이다. 마이산의 등산로 초입에서는 감자기 영상으로 풀린 날씨가 산 오르기에 딱 좋다며 의기가 양양 했던 나. 일 킬로, 이 킬로를 오르다 보니 웬걸, 숨이 가빠오기 시작했다.

지난 연말 독감을 앓으면서 급격히 저하된 체력에, 그 바람에 부족했던 운동량에 푹해진 기온으로 녹기 시작한 질척한 흙길까지 겹쳐 ‘산 다람쥐’는 실력 발휘를 못 하고 있었다.

겨우 삼 킬로를 올라 쉼터에 앉았더니 모자 밑으로, 점퍼 안으로 땀이 흥건했다. 평소 같으면 땀 한 방울 안 흘릴 거리였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고 나니 나는 슬슬 기가 죽기 시작했다. 다시 매표소로 돌아내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1.2 킬로만 더 가면 다다른다는 ‘탑사’ 이정표가 내 호기심을 자극했고, 다시 산을 올랐다.

경사가 40 도는 너끈히 될 오르막길을 로프까지 잡아가며 올랐고, 말의 귀를 닮았다는 마이산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진 해발 600미터에서는 숨을 고르며 사진을 찍었다. 드디어 멀리서 사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고, 그렇게 따라 내려가니 탑사가 눈앞에 있었다.

놀라운 것은 온 몸이 땀에 젖어 두 시간 만에 도착한 탑사가 매표소로부터 십오 분이 채 안 되는 거리에 있었다는 사실. 산이란 그런 것인가?

들어가 보기 전에는 능선의 굴곡이 어떤지, 땅의 상태가 어떤지, 내 몸과의 호흡이 어떤지,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나를 울릴지 혹은 나를 웃게 할지 모르는 것인가 말이다. 평지로 걸어가면 십분 남짓에 도착했을 것을 산으로 돌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시간이 흘렀더라는 체험이 멋모르던 ‘산 다람쥐’를 겸손하게 만들었다.

▲ 두릅 미나리 장떡

산에 들어가 보니 설을 앞 둔 지금, 이미 봄은 와 있었다. 겨우 내 얼었던 땅이 녹아 물을 머금으니 촉촉했고, 땅이 촉촉해 지니 빛 바랬던 풀떼기가 꿈틀대기 시작하는 듯 했다. 경사 진 등성이를 오를 때에는 나무 마다 껍질을 꼭 잡아가며 의지를 삼았는데, 나무 껍질마다 맨들 윤이 나고 있었다.

산에서 나가면 제일 먼저 두릅을 사서 맛보리라 생각이 들었고, 서울에 귀가 하지마자 가평 두릅 한 봉지를 사게 되었다. 장떡이라 하면 ‘장’으로 간을 맞춘 지짐을 말하는데, 나는 주로 고추장을 쓴다. 장떡 반죽을 만들 때 감자 가루를 넣으면 담백하면서 쫄깃해지고, 찹쌀 가루를 넣으면 가장자리가 바삭하게 지져져 감칠맛을 더하며 솔잎 가루나 녹차가루를 조금 넣으면 기름내를 잡아준다.

계란 물을 풀고 고추장을 넣고 부침가루와 찬밥을 적당히 섞어 부치는 것이 내 방식인데, 이렇게 부친 장떡은 ‘떡 맛’은 떨어지지만 포만감이 들어 식사 대용으로 좋다. 막걸리나 맥주를 한 잔 곁들이면 찬 밥 한 공기로 세 명은 거뜬히 먹일 수 있다.

장떡 반죽을 동그랑땡처럼 작게 떠서 팬에 올리고 한 면이 바짝 익었을 즈음에 작게 다듬은 두릅이나 튼튼한 미나리 잎줄기를 꼭 박아서 뒤집어 주면 봄에 부치는 화전처럼 모양이 이쁘다. 발그레하게 양념이 된 장떡에 꼭꼭 박힌 봄 야채를 보면 벌써 봄이 온 듯해서 술맛이 더 난다.

▲ 돌나물 간장국수

어렸을 적 생각을 해 보면 아파트 단지였음에도 불구, 집 앞 화단에는 돌나물이 지천이었다. 시골에서 이사를 온 옆집 아이들은 내게 돌나물을 함께 뜯자 했고, 나는 풀밭에 다닥다닥 붙어 자라는 돌나물이 식재료가 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얼마나 신기했던지 아직도 봄이면, 다섯 살 봄에 아파트 화단에서 손톱 사이가 까맣도록 신나게 뜯던 돌나물이 떠오른다.

돌나물은 너무 풋풋해서 오히려 비리다는 이들도 있는데, 고춧가루에 설탕, 식초와 참기름으로 살살 무치면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물엿이랑 간장을 섞어 고추를 졸여 두었던 반찬 통에 고추는 싹 다 먹고 달큰한 간장만 남아서 소면을 삶아 비벼 보았다.

여기에 잘게 부순 땅콩 가루를 넣어 짠 맛을 상쇄 시키고 얇게 썬 생양파와 매콤한 돌나물 무침, 불고기 양념하여 볶은 고기를 푸짐하게 올려 내니 긴 겨울의 끝에 잃었던 입맛을 살려 주는 별식이 탄생했다.

사람들이 잔꾀를 부리고, 서로 거짓말 하고, 상처를 주고 받고 하는 사이 계절은 저절로 흐르니, 두 볼이 떨어지게 춥던 겨울도 벌써 지나 봄이 오고 있다. 큰 산에서 내려 보면 고가의 수입차도 경운기도 퀵 서비스 이륜차도 다 같은 크기로 보이는데, 그렇게 통이 큰 산을 우리는 무서운 줄 모르고 살아간다. 그래서 감히 ‘등산’이라고, 산을 올라탄다고 말한다.

산은 우리 사는 세상보다 훨씬 크고 깊어서 ‘들어가야’, 또 ‘들어가는 마음’으로 바라 봐야 비로소 씩 웃어 준다. 봄이 오고 있는 가까운 산에 조만간 한번 ‘들어가’ 보시길.

푸드 채널 ‘레드 쿡 다이어리’ 진행자 박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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