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임(55ㆍ여)씨는 서울 마포구에서 안마로 생계를 꾸려가는 시각장애인이다. 한달 내내 일해도 대학생 딸(21)을 뒷바라지하며 살아가기에 힘이 부친다.
그래도 유씨는 자신보다 더 가난한 이웃을 잊지 않으며 산다. 지금까지 이들을 위해 모두 1,200만원을 내놓았다. 지난달에는 시각장애인 안마사였던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보험금 500만원 마저 국제구호기구 월드비전에 기부했다.
어려운 사람의 사정은 겪어본 사람만이 알기 때문일까. 19일 이해찬 국무총리의 초대로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 모인 ‘이웃사랑 실천자’ 23명 중에는 주는 쪽보다 받는 쪽에 있어야 어울릴 것 같은 우리 이웃들이 많았다. 이들의 선행은 “이웃사랑은 넉넉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며 애써 위안하며 살아가는 우리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12살에 어머니를 잃은 유씨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부산의 장애인을 위한 고아원 ‘라이트하우스’에서 10년을 보냈고, 1979년 하나뿐인 아들을 프랑스로 입양시켰다. 미혼모의 아이를 입양해 ‘가슴으로 낳은’ 소중한 자식이었지만 7살이 되던 해 아들은 사고로 시력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유씨 부부는 결국 아들의 치료를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해외 입양을 선택했다. 유씨는 “내가 어려서 남의 도움으로 컸고, 내 자식마저 지금 누군가의 도움으로 크고 있다고 생각하니 ‘받은 만큼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의 소원은 프랑스에서 의젓하게 자랐을 아들을 한번 만나보는 것이다.
이발사 민병학(65)씨도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이웃 돕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민씨는 지난 40여년간 서울 도봉동에서 ‘향토이발관’을 운영하면서 도봉구 일대 장애인과 소년·소녀가장, 독거노인 등을 대상으로 무료 이발 및 생활 지원 봉사를 펼쳐왔다. 민씨가 이발관에서 버는 수입은 한 달에 100만원이 채 안된다.
이발소 운영비를 빼면 민씨 부부의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기도 빠듯하다. 그러나 민씨는 “나는 입에 풀칠이라도 하지, 제 때 먹지도, 씻지도 못하고 비참하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아느냐”며 “그런 사람들에 더 많은 도움을 못 줘 미안할 뿐”이라고 겸손해 했다.
이 밖에도 처녀시절 전쟁고아 구호 활동을 시작으로 이웃 돕기에 일생을 바쳐온 권순남(68)씨, 15년간 식당 일로 모은 1,000만원을 전액 불우 청소년을 위한 학자금으로 기부한 한태선(68)씨 등 참석자 개개인의 사연은 어느 것 하나 흘려 들을 수 없을 만큼 가슴을 울린다.
이 총리는 이날 23명의 이웃사랑 실천자들과 점심을 함께 하며 격려하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아름다운가게,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등 3개 단체 대표자에게 각각 100만원의 기부금을 전달했다.
정철환 기자 ploma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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