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충무로는 ‘각설탕’ ‘내사랑, 마음이’(가제) 등 말과 개가 주인공인 두 편의 영화를 개봉한다. 박중훈 주연의 ‘꼬리치는 남자(‘1995)가 개에게 주요 배역을 맡긴 적은 있으나, 동물이 주연을 꿰차기는 이 두 영화가 처음이다.
로맨틱 코미디나 느와르 장르에 변형을 가하며 소재 빈곤에 시달리는 충무로로서는 새로운 시도인 셈. 그러나 해외에서 개와 곰을 전면에 내세운 ‘벤지’ ‘베어’ 등이 큰 성공을 거둔 사례가 있다 해도 국내에서 동물에 주연을 맡기는 것은 만만치 않는 도전이다. 한국영화의 새 지평을 열어가는 말과 개의 연기 세계를 들여다 보았다.
경기 과천 경마공원에서 ‘각설탕’을 촬영중인 임수정은 자신과 호흡을 맞추는 배우의 몸짓에 흠칫 놀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500㎏에 달하는 상대 배우의 육중한 몸짓에 잘못 걸리면 뼈도 못 추리는 불행한 상황을 맞을 수 있기 때문.
하지만 상대가 1,000대1의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오디션’을 통과한 전도 유망한 배우라 함부로 대할 수도 없다. 더군다나 아무리 말을 해도 통하지 않는 사이이니 묵묵히 불편을 감내하며 감정 교감을 통해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려 한다.
임수정의 상대 배우 이름은 천둥이. 올해 세 살로 국내 최초의 말(馬) 배우이다. 한국마사회에서 ‘근무’하다 잘생기고, 순한데다 연기를 잘할 것 같다는 이유로 캐스팅됐다. 기수가 되고 싶어하는 제주 소녀 시은(임수정)과 경주마 천둥이의 우정을 다루는 영화의 내용에 맞춰 당당히 주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천둥이의 출연은 마사회의 지원으로 이루어져 개런티가 딱히 없다. 굳이 드는 개런티라면 간식인 각설탕 정도. ‘무임금 연기자’이지만 촬영장에서 천둥이는 ‘천상천하 유마독존’(天上天下 唯馬獨存)이다.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배우와 스태프의 얼굴이 환히 펴지다가도 오그라진다.
천둥이가 ‘감정'을 제대로 잡아 연기에 들어갈 때 까지 촬영장은 마냥 대기 상태다. 그래서 지난해 9월 2일 시작한 촬영은 6개월이 훌쩍 지난 2월에야 끝난다.
말이 출연하다 보니 ‘각설탕’에는 다른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스태프들이 함께 일한다. 레이싱 디렉터 김효섭씨는 현역 기수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긴박한 경주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말들의 달리기를 조절하고 지도한다. 액션 영화의 무술감독에 견줄만한 황경도 마필관리 감독은 천둥이가 내밀한 연기를 몸으로 표현하도록 이끌어낸다.
천둥이가 금새 싫증을 느끼고 연기에 한계가 있다 보니 대역도 어느 영화보다 많다. 천둥이 또래에 비슷한 외모의 말 5마리가 이마에 천둥이의 상징인 다이아몬드 무늬 ‘분장’을 한 채 대기중이다.
주인과 부모에게 버림 받은 개 마음이와 한 소년이 나누는 깊고 순수한 사랑을 담아낼 ‘내사랑, 마음이’ 도 ‘각설탕’과 사정은 비슷하다. ‘내사랑, 마음이’의 아역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제작진은 세 살짜리 개 달을 연기시키기에 벌써부터 마음이 급하다. 달은 이미 애견쇼에서 스타로 인정 받은 연기 경험자.
그러나 제작진은 달이 연기 스트레스 때문에 아프기라도 할까 봐 노심초사다. 역시 혼자 연기를 감당하기는 어려워 달의 새끼 2마리가 대역으로 나설 예정이다.
추석 개봉을 목표로 촬영을 준비중인 ‘내사랑, 마음이’ 제작진은 사람 배우와 친근감 쌓기, 배우에 대한 복종, 본격적인 연기 지도 등 3단계로 나누어 달의 영화 데뷔를 돕고 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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