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성화가 지나가는 길 옆. 공무원들은 국가의 치부를 드러낸다는 이유로 불법 주택 철거에 나선다. 삶의 터전을 빼앗길 수 없는 주민들은 강하게 반발하지만 철거반원을 가장한 복역수들의 폭력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권총 사용까지 불사하며 철거를 지휘하던 악질 경찰 김안석(최민수)은 눈물처럼 쏟아지는 비와 함께 주민들의 삶을 짓밟는다. 그리고 막 출소한 지강혁(이성재)은 안석과의 헤어나올 수 없는 악연의 소용돌이에 빠져든다.
‘홀리데이’의 출발은 제목과 달리 마음을 편히 쉬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카메라는 인권이라는 단어가 무색한 폭압적인 교도소로 옮겨 1980년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뒷면을 발가벗기며 마음을 계속 누른다.
철거에 반대하는 과정에서 검거된 강혁은 징역 7년에 보호감호 10년 형을 선고 받는다.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분노를 삭이고 있는 와중에 안석이 부교도소장으로 부임해 온다.
복수를 꿈꾸던 강혁은 부당한 보호감호 형량에 불만을 품은 동료들과 무장 탈주를 감행한다. 이들은 권력 상층부 인사가 큰 비리에도 불구하고 작은 형량을 받는 현실에 분노를 터뜨리고, 서울을 휘저으며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의 부조리한 사회상을 고발하려 한다.
1988년 올림픽의 환호가 채 가시지 않은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탈옥수 지강헌의 인질극 사건을 토대로 한 ‘홀리데이’는 다분히 사회 비판적 요소를 담고 있다.
가진 자만이 대접 받는 사회, 약육강식의 논리에 의해 철저히 움직이는 사회에 대한 고발은 숨이 턱 막히게 한다. 사회 여러 분야에서 인권이 몰라보게 신장된 지금, 영화 속 이야기는 흘러간 노래처럼 들리지만, “잘못 된 것은 잘못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그 정도 자유는 있어야 한다”는 지강혁의 외침은 여전히 큰 울림을 갖는다.
하지만 사회를 향해 날카로운 비판의 칼을 들이대는 ‘홀리데이’의 목소리는 스크린 밖으로 메아리 치지 못한다. 총체적이면서 구조적인 사회 악의 상징이어야 할 안석의 광기 어린 행동이 집단이 아닌 개인의 문제로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최민수의 연기는 눈길을 잡지만, 영화의 주제와 몸을 섞지 못하고 화면 위를 부유한다.
10㎏을 감량, 근육으로 다져진 깡마른 체구로 영화에 몰입한 이성재와의 연기 호흡도 엇박자를 이룬다. 그러나 편견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고 탈옥수들의 삶을 좇는 영화의 시선은 허무맹랑한 액션영화가 주류를 이루는 충무로에 작지 않은 의미를 던진다. ‘리베라메’ ‘바람의 파이터’ 등의 양윤호 감독. 19일 개봉. 18세.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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