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렵다는 초대형 ‘로비 스캔들’의 와중에 미 공화당의 로비 개혁안이 17일 공개됐다. 조지 W 부시 대통령까지 문제의 로비스트 잭 아브라모프로부터 받은 6,000달러를 돌려주겠다고 하는 등 일대 소동이 벌어진 상황이어서 본질에 천착한 그럴듯한 개혁안이 나올 것이란 기대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생각만큼 미 의회의 수준은 높지 않았다. 개혁안 내용을 살펴보면 여행경비 외부지원 금지, 선물 제한, 의회 관계자의 로비스트로의 전직 금지기간 연장 등이 마치 주요 개혁과제인양 자리를 차지했다.
직무관련 범죄를 저지른 의원들에 대해선 연금 혜택을 박탈한다는 조항도 포함됐다. 이러한 내용이 실망스럽다고 하는 이유는 개혁안 어디에서도 의원-로비스트간 검은 유착관계의 핵심인 정치자금에 대한 문제의식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연금박탈과 관련해선 “그 조항에 영향을 받을 의원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야유가 쏟아진다. 미국 정치 전체를 움직이는 천문학적인 정치자금의 규모를 감안하면 여행경비나 선물 등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다.
이 정치자금의 검은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주요 고리가 바로 로비스트라는 것은 미 정가에서는 상식이다. 로비스트들이 반 공개적으로 특정 정치인의 정치자금 모집책으로 일하거나 아예 선거참모로 공생의 기반을 다지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더 심각한 것은 공화당을 부패집단으로 몰아세우는 민주당의 개혁안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공화당의 개혁안이 나오기 전에 미 언론들이 “사소한 변화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치유는 이뤄지지 않을 것”, “로비스트들은 결국 자신들을 지켜낼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 딱 들어 맞은 셈이 됐다.
정치권의 부패를 보는 것은 어디서나 짜증나는 일이지만 이를 ‘눈 가리고 아웅’식 개혁으로 미봉하려는 정치의 속성도 역겨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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