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전 덩샤오핑(鄧小平)의 남순(南巡)에 비유됐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 결산서는 꽤 짭짤할 듯 하다.
세계는 광저우(廣州) 등 시장 개방도가 가장 높은 중국 남부를 둘러보는 김 위원장을 지켜보면서 북한의 개혁 개방 가능성을 기대했다.
최근 위폐 제조 혐의로 미국으로부터 금융제재를 받고 유엔 총회에서 인권 유린 국가로 낙인 찍힌 북한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할 듯한 메시지를 보낸 것은 북한 정권에 큰 수확이다. 물론 이 성과는 방중 이후 실제 개혁 개방 조치로 이어져야만 지속성을 갖는다.
김 위원장은 또 정권 내부적으로 장악력을 키웠을 것이다. 자신보다 훨씬 보수적인 군 지도자들을 방중에 참여시킴으로써 개혁 추진의 명분을 강화했다.
최근 농업부문 등에서 성과를 이룬 자신감을 바탕으로 김 위원장이 군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정책을 펼 가능성이 커진 것 만은 분명하다. 2001년 상하이(上海) 방문 이후 신의주경제특구를 구상했던 김 위원장의 과거 행보도 이런 맥락에서 반추되고 있다.
북중 관계 측면에서 양측은 윈윈(win_win)했다. 김 위원장은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을 통해 상당한 경제지원 약속을 받았고, 중국은 북미간 금융제재 문제로 경색을 면치 못했던 6자회담의 국면을 일거에 바꾸며 ‘북한에 지렛대를 갖고 있는 나라는 중국 밖에 없다’는 인식을 국제사회에 다시 심어주었다.
미국의 금융제재 문제를 6자회담 재개와 연계시켜서 사면초가에 빠진 북한은 못이기는 척 중국의 설득을 받아들임으로써 중국의 체면을 살리면서 북한의 입지도 넓혔다. 특히 김 위원장의 방중이 끝나자 마자 베이징(北京)에서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만나 6자회담 재개방안을 모색하는 모양새는 이런 효과를 극대화했다.
이번 방중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꽤 나온다. 광둥(廣東)성 방문이 개혁의 큰 그림을 놓고 장기적으로 계획된 것이 아니라 북미간 대결이 첨예화하고, 중국의 대북 압력이 높아짐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이뤄진 것이어서 향후 상황을 낙관할 수 없다는 지적도 설득력이 있다.
베이징=송대수 특파원 ds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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