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화수분 같은 우리 시대의 글꾼 최인호(61)씨가 수상록 ‘문장’(랜덤하우스 중앙, 2권)을 펴냈다. 첫 머리에 그는 “(이 책은) 내 자신을 비우기 위한, 나를 겸허하게 돌아보는 마음으로 써 내려간, 문장”이며 “글을 쓰는 내내 부끄러우면서도 행복했다”고 썼다.
고교 2학년 때(18세, 1963년) 등단한 그는 지금껏 누구보다 성실한 직업인이었고, 그 응분의 보상으로 밝고 빛나는 길을 걸어왔다. 적어도 바깥에서 바라본 그의 모습이, 그의 문학에 대한 대접이 그러했다.
이 책은, 성공한 작가의 표상처럼 그의 손가락 사이에 느긋하게 매달린 시가와 초로의 눈가에 푸근하게 앉은 주름에 가려져있던, 그늘의 기록이다. 쉴 새 없이 길어올린 이야기의 화수분에 새겨진 생채기의 흔적이고, 눈부신 스포트라이트 속으로 걸어가며 그림자처럼 힘겹게 끌고 다닌 깊은 사유의 여백이다.
“살아 있음은 초가을 황혼 무렵 풀을 스치는 바람 소리 같은 것. 조용히 귀 기울이면 들을 수 있다. 풀과 풀이 엮는 풍금소리를…. 우리도 언젠가는 떠날 것이다. 바람이 불면 잠시 누웠다 일어서는 풀처럼.”(‘살아 있음의 의미’ 부분)
그는, 사랑한 책의 한 구절, 노승의 가르침, 일상의 다단한 경험 등을 짧게는 두어 줄의 아포리즘으로, 길게는 버젓한 묵상의 수필로 결실했다. 자신을 알고 세상을 보며 남과 더불어 미래를 여는 이 지혜의 문장들을 쓰면서 그는 스스로 느끼기에 닿아야 할 곳이 아직 멀어 “내내 부끄러”웠고, 그래도 저만치 보여 “행복했”을 것이다. 그 부끄러움과 행복감 속에 부대끼고 긴장하며 그는 지금도 원고지를 마주하고 꼿꼿이 앉아 있을 것이다.
그는 지방 신문에 싣던 소설 ‘제4의 제국’ 연재를 이 달 말 마무리지은 뒤 책 출간을 준비하고, 그 틈에 재미 경제인 단체의 소설 ‘상도’ 초청 강연을 위해 미국에 갈 예정이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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