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한 명이 칼럼을 쓴 후 느꼈던 참담함을 사석에서 토로한 적이 있었다. 인터넷 게시판의 악의적인 댓글들 때문이었다. 그는 왜 정당하지 않은 비난과 욕을 감내하면서까지 자기가 글을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푸념했다.
그냥 무시하라고 위로했지만, 그도 사람인지라 아마도 그 불쾌감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공감하고 칭찬하리라 기대하며 글을 싣는 이는 없게 마련이다. 하지만 욕설과 비꼼, 비방과 인격적 모독으로 가득 찬 댓글은 글 쓰는 이들 대부분의 힘을 쏙 빠지게 만든다.
인터넷이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을 현실에서 제공해줄 수 있으리 라던 기대는 점점 현실에서 멀어지고 있는 듯하다. 유치한 욕설은 철없는 네티즌의 스트레스 해소책이라 간주하자. 그러나 진짜 문제는 토론과 숙의가 가능한 사이버 공간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이해를 같이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자기들끼리만 상호작용하고, 정작 벽 너머에 있는 사람들 이야기에는 귀를 닫는 것이 현실이다.
언론사들이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만들고 독립적인 온라인 미디어가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많은 언론학자들은 독자ㆍ시청자의 참여 가능성에 주목하였다. 어쩌면 기자가 제공하는 기사보다도 이들의 댓글들이 진정한 저널리즘의 역할을 해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그 생각이 꼭 틀린 것만은 아니었다.
신문과 방송이 언론으로서의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작은 인터넷 게시판 하나가 황우석 교수 논문의 문제점을 밝혀낸 것이 바로 그 예이다. 그러나 그 이후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소위 ‘황빠’들은 자기들에게 우호적인 공간에 모여 서로를 격려하며 부추겼고, 소위 ‘황까’들 역시 자기들만의 공간에서 동류의식을 진하게 공유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쉽게 ‘알바’로 치부하였고, 신중하거나 중립적인 이들에게는 어느 편인지를 분명히 하라고 다그쳤다. 한 학자의 말처럼, 분화한 사이버 공간의 두 집단은 집단 내적인 강화기제를 통해서 더욱 극단화했다.
얼마 전 홈페이지를 대폭 개편한 청와대가 이번에는 블로그를 개설한다고 한다. 홈페이지나 ‘국정브리핑’과는 또 다른 차원의 미디어를 자임하는 셈이다. 청와대가 언론의 영역 안으로 직접 뛰어드는 것을 꼭 비판만 할 일은 아니다.
누구든지 말할 권리가 있고, 그 경로를 애써 막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블로그가 공익성과 공정성을 구현하는 저널리즘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할 지는 의문이다. 소위 ‘노빠’들이 모여 자기들끼리만 토론하고 동조하는 공간이 되지는 않을지 우려된다. 어쩌다 간혹 출현하는 ‘노까’에게는 조중동 동네에 가서 놀라고 빈정대지나 않을지.
블로그나 미니홈피, 그리고 게시판의 댓글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자기를 표현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에는 제한된 소수만이 크게 말할 수 있었고, 그 목소리조차 기자나 언론사를 매개하지 않고는 다른 사람들 귀에 다다를 수 없었다. 그 시절은 분명히 지나갔다.
지금은 황빠든 황까든 대통령이든 누구나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다양한 목소리들이 골고루 전달되지 않는다면 이를 공론장이라 할 수 없다. 언론이 될 수도 없다.
역설적이지만, 분화하고 극단화하는 사이버 공간의 언론기능을 복원시켜 줄 의무는 전통적인 ‘대형’ 언론에 있다. 황빠와 황까, 노빠와 노까 등 다양한 목소리들을 적극적으로 포괄하고 이를 다양한 사람들에게 폭 넓게 제시하는 기능을 해줄 수 있는 공간은 바로 신문이고 방송인 것이다.
이 ‘공적인 숙의영역’으로 기능하는 것이야말로 죽어가는 신문이나 방송뉴스의 살 길이기도 하다. 한국의 신문과 방송은 그 역할을 하고 있는가?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미 답을 알고 있으리라. 그래서 더 암담하다.
연세대 영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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