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경찰이 어제(16일) 유령당원 문제로 여당의 서울시당을 압수 수색했는데.
“유령당원은 없어져야 한다. 정치개혁을 외치면서 구태정치를 하는 것은 분명히 개선돼야 한다. 그러나 수사가 야당 탄압으로 변질돼서도 안 된다. 당원 명부를 일일이 검증하면 야당의 존립이 위태로울 수 있다. 정치적 의도가 있으면 의연하게 맞서 싸워야 한다.”
_정당개혁 상징이던 기간당원제가 현실적 문제로 개혁대상이 되는 듯 하다.
“기간당원이나 책임당원만으로 정당을 운영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정당의 문호를 유연하게 열어둬야 한다. 소규모 국민참여로는 부족하다.”
_미안한 질문을 하겠다. 대선주자 중 지지도가 가장 낮은데 왜 그렇다고 보나.
“허허…뭐, 아직 제대로 평가하고 검증하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닌가.”
_경기도가 갖는 한계가 있나.
“어차피 주어진 제약 조건이다. 한국일보 인터뷰를 보니까 정동영 전 장관도 1년반 만에 돌아오니 여의도 정치가 생소하다고 했더라. 나는 4년을 여의도에서 벗어나 있었다. 본격적인 국면에 들어가면 달라질 것이다.”
_이명박 서울시장은 청계천 복원에 힘입어 상승세인데.
“일 잘하고…, 서울은 화려한 무대 아니냐. 경기도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프라를 구축, 서울이라는 무대를 뒷바라지한다. 이 시장이 춤꾼이라면 나는 일꾼이다.”
_그럼 경기지사로 무슨 일을 했는지 설명해달라.
“나는 일자리를 많이 만들었다. 파주 LG필립스 공장에서만 2만5,000명을 고용한다. 그 큰 공장을 3년 만에 세워올려 양산체제에 들어갔다. 첨단산업 입지를 조성하고 R&D시설을 곳곳에 유치했다. 눈에 드러나지 않지만 국가경쟁력 강화에 앞장섰다. 영어마을 조성은 교육의 혁명이라고까지 불린다. 중앙정부가 할 일을 우리가 했다. 서울도 따라 하고 부산 광주 등도 준비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영어교육의 틀을 바꿔놓고 있다. 첨단산업, R&D, 영어교육, 한류우드 등 국가경쟁력의 바닥을 다졌다.”
_일각에선 경기지사나 서울시장을 다시 맡으면 어떻겠냐는 얘기도 하는데.
(손 사래 치면서) “그건 말할 가치도 없다.”
_지난해 한 특강에서 ‘시대정신을 대표한다’고 말했는데 구체적으로 시대정신이 뭔가.
“한마디로 통합과 실사구시다. 이제 피를 부르는 정치에서 벗어나 땀으로 나라를 일궈야 한다. 산업화세력, 민주화 세력이라고 편갈라 싸우는 건 그만 하자. 좌우를 아우르는 통합이 필요한 시대다.”
_왜 당신이 그런 시대정신의 적임자인가.
“나는 피 흘리며 민주 쟁취에 앞장섰다. 정치권에 들어와 땀을 흘리며 세계 흐름을 보고 나갔다. 민주화, 산업화 세력을 껴안고 비전 갖고 있다고 자부한다. 현 정권은 80년대의 이분법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한나라당은 과거 개발시대의 향수에 젖어있다. 파주 LCD단지 저절로 된 게 아니다. 군 부대 설득 위해 수없이 찾아갔고 겨울에 공사현장이 얼지 않도록 대형 텐트를 치고 온풍기를 돌리면서 일을 했다. 이게 실사구시다.”
_한나라당이 보수를 고집하는 한 집권을 못한다는 주장도 했는데.
“보수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자유시장경제의 개념으로만 인식되지 않는다. 군사독재, 부정비리, 정경유착 등 찌꺼기들이 같이 묻어 나온다. 보수를 표방해서는 역사를 거머쥘 수 없다. 이 시대의 화두는 혁신이다. 한나라당은 시대의 명분을 거머쥐어야 한다. 보수를 하려면 개혁적 보수를 해야 한다. 시장 실패를 한나라당이 앞장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장애인 노인 실직자를 국가가 보호해야 하고 기회의 망을 만들어 줘야 한다.”
_고건 전 총리도 본보 인터뷰에서 중도통합, 실사구시를 얘기했다. 지방선거 후 정계개편이 있게 되면 중도통합론으로 뭉칠 수도 있나.
“중도통합은 단순 구호가 아니다. 행정경험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학생운동을 하면서 고문 당하고 감옥가면서 역사의 한 복판에서 싸웠다. 편한 삶을 생각하지 않고 민주화와 정의를 위해 몸을 던졌다. 그리고 영국 유학을 갔다. 거기서 나는 세계를 통해 우리나라를 다시 봤다. 민주화 운동을 할 때 본 한국과는 다르더라. 그 때의 결론이 통합이다. 아무 것도 안하고 역사 속에서 싸우지 않고 순탄하게 가자는 식의 중도통합이 아니다.”
_고 전 총리의 논리와는 다르다는 얘기인가.
“전혀 다르다. 통합을 아무나 얘기하고, 실사구시를 아무나 얘기할 수는 없다. 해외 출장을 가서 외국 기업 하나를 끌어오기 위해 대만, 싱가포르 등과 피 말리는 싸움을 한다. 그것이 실사구시다. 책자나 신문 단어를 갖고 함부로 얘기하면 안 된다.”
_결국 고 총리 주변에서 나오는 중도통합세력의 연대나 신당창당에 관심없다는 얘기인가.
“역사 속에서 치열하게 투쟁하지 않은 사람은 나라를 책임질 수 없다. 여야 어디에 있는 사람이든 마찬가지다.”
_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이명박 서울시장도 해당되나.
“나는 그 얘기만 했다.”
_여야 중도세력이 움직이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한나라당의 잠재력으로 국민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외연확장이 가능하다고 본다. 물론 전제는 한나라당의 변화와 혁신이다. 한나라당이 지금 잘 나가는 것 같지만 한나라당 대 비 한나라당 구도로는 이길 수 없다. 한나라당 안에서 과거의 세력, 즉 냉전세력이나 개발독재세력이 똘똘 뭉치면 결과는 백전백패다. 49%까지 갈 수 있다. 그러나 마(魔)의 1, 2%를 넘지 못할 것이다.”
_그러면 한나라당의 사학법 장외투쟁을 어떻게 보나.
“국회로 돌아가서 국회를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장외투쟁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장외투쟁만 하면서 국회 버리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다.”
_사학법 자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왜 그런 법들을 자꾸 만들려고 하나. 세 마디로 얘기하겠다. 기업은 기업인에게, 교육은 교육자에게, 법은 엄정하게. 현행 법을 엄정하게 적용하면 사학비리를 근절할 수 있다.”
_시위로 농민이 사망하고 전경들이 다치는 사태가 빈발하고 있다.
“농민들의 아픔을 이해한다. 하지만 법질서의 개념이 더 굳건히 확립돼야 한다. 폭력적 시위문화는 없어져야 한다. 시위 전경들에게 명찰을 다는 발상으로 법질서를 지키고 공권력의 권위를 세울 수 없다.”
_수도권 규제완화에 애를 쓴 것으로 안다. 수도권 규제완화와 국토균형발전은 상충되지 않는가.
“규제완화와 균형발전은 배타적이지 않다. 수도권은 수도권대로, 지방은 지방대로 특화된 발전을 이룰 수 있다. 정부가 떡을 나눠주듯 공공기관을 이전해서는 안 된다. 설립 취지에 따라, 필요에 따라 이전해야 한다.”
_한현규 전 정무부지사가 수뢰로 구속됐다. 손 지사에도 부담이 됐을 것 같다.
“죄송할 뿐이다. ‘손학규 마저도’라는 생각을 했을 국민들에게 죄송하다. 그러나 수사 후에 저의 혐의는 없는 것으로 밝혀져 ‘역시 손학규’라는 믿음을 줄 수 있었다고 본다.”
_황우석 교수와 가깝고 지원도 많이 했다. 당장 경기도가 추진하는 황우석 바이오장기센터 는 어떻게 할 건가.
“계속 추진할 것이다. 바이오 장기는 10대 성장동력 사업 중 하나다. 현재로서는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서울대 조사가 진실규명의 결론을 내린 게 아니고 현재 진행중이다. 상반되는 다툼이 아직 있다.”
_재기 기회를 주자는 것인가.
“중요한 점은 진실규명이 언젠가 된다 해도 황 교수팀의 연구 성과를 완전히 말살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잘못되면 나중에 처벌해도 된다. 능력이 있다면 보여줄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황 교수가 요청하면 6개월이건 1년이건 줘야 한다고 본다.”
■ 포인트/ "나는 저평가 우량주 올라갈 일만 남았다"
손학규 경기지사는 꼴찌다. 각종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1%를 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는 "아직 본격적인 평가와 검증이 없어서"라고 했지만 고민스런 속내는 인터뷰 중간 중간 묻어나왔다.
손 지사 부인 이윤영 씨가 화제에 올랐다. 이 씨는 지난해 10월 손 지사의 미니 홈피에 여론조사에서 꼴찌를 한 남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담은 '꼴지 하던 날'이라는 글을 올려 많은 네티즌들의 격려를 받은 바 있다. 손 지사는 "그런 글을 올렸지만 집사람이나 나나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웃었다. 국민들이 야속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그럴 일이 없다"면서도 "언론은 좀 야속하더라"라고 했다.
하지만 '꼴찌'의 외침은 컸다. 손 지사는 "나는 저평가 우량주"라며 "본격적인 국면에서는 무섭게 상승할 테니 미리 사두라"고 호언했다. 그는 지지도 1%대이지만 박근혜 대표, 이명박 서울시장 등과 함께 한나라당의 '빅3'로 평가받는다. 대중의 평가는 아직 박하지만 잠재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반증인 듯했다. 그는 최근 영국 언론들이 박지성을 '일꾼'이라고 평가한 점을 원용해 "나는 춤꾼이 아니라 일꾼"이라고 말했다.
'꼴지 하던 날'이란 글에 부인 이 씨가 "속상하지요"라고 위로하는 대목이 있다. 그 때 손 지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걱정 마. 이제 나한테는 올라가는 일밖에 안 남았어."
정리=이동훈 기자 dhlee@hk.co.kr
인터뷰-이영성 부국장 대우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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