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변하기 마련이다. 한 정부를 구성하는 여러 기관도 권부의 성격이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권한과 기능을 조정받는다. 위상의 부침이 뚜렷할수록 권한과 기능 행사를 둘러싼 정부기관의 경쟁은 치열해진다. 그 변화에 민감한 곳이 수사기관의 양대 축인 검찰과 경찰이다.
청와대 비서실에 근무하는 경찰 파견 인력이 큰 폭으로 늘어난 사실은 경찰 위상 변화의 일례를 보여준다. 비서실 요소에 포진한 경찰관들은 청와대 안팎에 횡적 종적 인맥을 형성함으로써 그들이 속한 조직에 막강한 파워를 보태고 있다.
수의 팽창만이 아니다. 경찰대 출신을 필두로 한 엘리트 경찰관이 경찰의 두뇌로 성장하면서 경찰은 이전과는 다른 응집력과 조직력을 과시하고 있다. 경찰력의 양적ㆍ질적 도약이다.
반면 검찰은 위상의 추락을 경험하고 있다. 과거 검찰 힘의 원천이었던 청와대는 보호막 대신 견제의 칼을 들이댄다. 여당도 더 이상 검찰 편이 아니다. 검찰에 시달렸던 경험이 많은 여당 의원들은 오히려 검찰 개혁의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사면초가의 검찰이다.
검찰과 경찰간 역학관계의 새 변곡점(變曲點)에 정확히 수사권 독립 문제가 걸려 있다. 수사권 독립은 과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제기돼온 경찰의 숙원 사업이다. 경찰 공화국이라고 불렸던 5공 때는 물론 자치경찰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김대중 정부 때 경찰은 ‘독립’을 외쳤지만 검찰의 완강한 기세에 밀려 백기를 들고 말았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과거 검찰은 과거 정치권의 사안 개입을 겁내지 않았다. 법안 상정 전 경찰의 반란이 진압되기도 했지만 국회 처리 절차를 밟더라도 여야 모두 검찰 출신이 다수를 차지한 법사위라는 응원군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찰 수사권 독립을 공약으로 내건 현정부 들어 사정은 달라졌다. 대 의회 로비전에서 경찰을 당해낼 수 있다는 확신은 이미 없어졌다는 한 간부의 고백은 검찰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내부에서는 경찰과 협상하는 게 검찰의 이익을 보호하는 길이라는 온건론도 펼쳐진다. 여당이 법안을 주도하게 되면 최악의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열린우리당은 검ㆍ경을 대등관계로 본 경찰 의견을 수용한 조정안을 내놓음으로써 검찰을 경악하게 했다.
이 상황은 양측 갈등 해소가 현실적으로 힘의 충돌을 완충하는 길을 밟을 수밖에 없음을 역설한다. 독립을 외치던 경찰 총수가 물려갔더라도 검찰이 도약하는 경찰의 힘을 과거의 권위로만 억누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싸움이 경찰에게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경찰의 비상은 검찰이 경험했듯 권력 비대화에 대한 견제를 예고하고 있다. 15만의 인원과 우수한 두뇌까지 갖춘 조직의 비대화에 대한 우려는 내부에서부터 나오고 있다. 과연 경찰이 검찰과 대응하게 수사권을 운영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는지도 의문이다.
결국 수사권 갈등은 양측의 권한과 책임을 어떻게 규정할 것이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경찰에 일정부분 수사권을 넘겨주되 책임을 지우는 방안이 타당성 있는 대안으로 제시된다.
일본의 형사소송법은 검찰과 경찰을 ‘협력관계’로 설정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대등하게 운영되지 않는다. 일본 경찰은 검사가 수사 지휘를 위해 호출하면 만사를 제쳐두고 가는 게 관행이라고 한다. 수사 부실로 무죄가 선고될 경우 그 책임은 고스란히 경찰에 귀결되기 때문이다.
검ㆍ경의 갈등은 최종적으로 균형점을 찾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밥그릇 다툼이 아니라 진정하게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길이 어디에 있는가를 먼저 생각하는 검찰과 경찰을 기대해본다.
김승일 사회부장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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