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말 사육의 원조가 백제인이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유물이 일본 오사카(大阪)부 시조나오테시 시토미야기타유적에서 발굴됐다.
오사카부 교육위원회는 13일 이 유적 서쪽에 자리잡은 최대 폭 20㎙ 정도의 개천에서 백제 도래인들이 갖고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는 5세기 초반의 철제 말 재갈 조각 7점이 출토됐다고 발표했다.
크기가 작아 어린 말의 조련용으로 사용됐던 것으로 보이는 이 재갈은 백제 고분인 충북 청주시 신봉동 72호 고분의 출토품과 제작 방식이 같은 것으로 밝혀졌다. 보존 상태가 좋아 당시 말 재갈의 구조를 처음으로 알 수 있게 하는 귀중한 유물로 평가받고 있다.
교육위는 또 이번 조사에서 주거지 18동과 한반도계 토기 등을 함께 발굴해 이 지역이 백제 도래인들이 모여 살았던 집단 취락지임을 추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 동안 이 일대에서는 일본 고분시대 중기의 마구와 말의 뼈 등이 대량 발견돼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나오는 왕에게 군마(軍馬)를 공급하는 ‘가와치 말 사육장’이 있던 곳이라는 가설이 제기돼 왔다.
그러나 말이나 마구의 공급선 등에 대해 특별하게 밝혀진 것이 없어 특정하지는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번 발굴은 이 같은 가와치 사육장의 실상을 명확히 드러냈고 백제 도래인들이 말과 마구를 갖고 일본에 건너와 왕에게 군마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 사실을 밝혀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일본 고분시대(3세기~6세기 말)에 가와치(河內)국이 지배했던 이 지역은 한반도와는 관계가 매우 깊은 곳이다.
일본에 천자문 등을 처음으로 전한 백제 왕인(王仁)박사, 그의 자손으로 야마토노아야우지(東漢氏)와 함께 야마토(大和) 정권을 지탱한 가와치노후미우지(西文氏)의 주요 활동 무대이기 때문이다. 이번 발굴로 일본에서 한반도 도래인의 활동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발굴을 담당한 이와세 도오루(岩瀬透) 오사카부 문화재보호과장은 “5세기 초기부터 말의 사육을 시작한 대규모 도래인 취락의 구체적인 모습이 밝혀지게 됐다”고 평가했다.
치가 히사시(千賀久) 나라(奈良)현립 가시하라고고학연구소 박물관 주간은 “이번 발굴로 가와치의 말 사육 집단이 백제인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말할 수 있게 됐다”며 “말 사육의 역사를 생각하는데도 커다란 단서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김철훈 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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