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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대나무 - '竹' 동양을 아우른 의지의 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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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대나무 - '竹' 동양을 아우른 의지의 표상

입력
2006.01.14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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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송대의 문인 소동파는 “고기 없이 밥을 먹을 수 있으나 대나무 없이 살 수는 없다”고 했다. 그는 왜 고기는 안 먹어도 좋지만 대나무 없는 집에서는 못살겠다고 했을까.

대나무는 휘어질지언정 부러지지 않기 때문에, 옛 사람에게는 절개와 강직함의 상징이었다. 바람결에 맑은 소리를 내고 달 빛 아래에서 은은한 그림자를 드리우지만, 눈서리가 몰아쳐도 푸른 빛을 잃지 않는 고결한 기품이 있었다. 그뿐이랴. 생활 도구로, 붓으로, 무기로, 피리로, 지팡이로 우리가 평생을 함께 하지 않았는가.

‘대나무’는 동아시아 삼국의 공통적인 문화 키워드를 찾는 시리즈물 ‘한ㆍ중ㆍ일 문화코드읽기’의 제 3권이다.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등 23명이 썼고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책임 편찬을 맡았다.

대나무에 대한 세 나라의 생각은 큰 차이가 없다. 지조, 명예, 신통…. 대체로 이런 것이다. 신라 신문왕 때의 대나무 피리 만파식적(萬波息笛). 피리를 불면 적군이 물러나고 파도가 잠잠해졌다고 하니 대나무 소리에 영성(靈性)이 있었다는 것이다. 신라 장수 죽죽(竹竹)은 절개와 의지의 표상이다.

백제의 공격을 받은 그는 “아버지가 나를 죽죽이라 이름 지은 것은 추울 때에도 시들지 않고 꺾일지언정 굽히지 말라 함이다. 어찌 죽음을 겁내 항복하리오”라며 끝까지 싸우다 전사했다.

중국에서 대나무는 아버지의 상징이었다. 유교의 예법을 정리한 ‘예기’는, 아버지는 둥근 하늘을, 어머니는 모난 땅을 뜻하는 풍속에 따라 아버지상에는 둥근 대나무를 짚고, 어머니상에는 버드나무나 오동나무를 네모나게 깎아 짚고 곡을 하도록 했다. 죽순이 먹고 싶다는 병든 어머니를 위해 한 겨울 대밭에 들어간 맹종의 이야기는 대나무가 효도를 의미했음을 보여준다.

죽순을 못 구해 대밭에서 눈물을 흘렸더니 뜻밖에도 죽순이 솟아올라 어머니의 소원을 이뤘다는 이야기다. ‘시경’에는 ‘저 기수(淇水)의 물굽이를 바라보니 푸른 대가 아름답게 우거졌구나’라는 시구가 나오는데 이는 절차탁마하는 선비의 본분을 대나무에 빗대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대나무는 어떨까. 정토진종(淨土眞宗)의 개조인 고승 신란은 한때 탄압을 받고 유배당한 적이 있었다. 그 때 그는 가지고 있던 대나무 지팡이를 거꾸로 땅에 꽂으며 “내가 말하는 불법(佛法)이 널리 세상에 퍼진다면 이 지팡이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지팡이는 거꾸로 박힌 상태에서 가지와 잎이 무성하게 자랐으며 그 뿌리로부터 자라는 대나무는 모두 거꾸로 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일본인의 의식 세계에서 대나무는 불목(佛木)이었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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