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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여행 - 철암 - 빛바랜 검은 榮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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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여행 - 철암 - 빛바랜 검은 榮華

입력
2006.01.13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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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빛 만큼이나 어둡다고 외면받는 걸까. 태백은 지금 탄광의 이미지를 벗고 관광 도시로, 고산 체육 도시로 거듭 태어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잇단 폐광 이후 새로운 소득을 창출하기 위한 몸부림일 것이다.

태백 시내를 벗어나 통리로 해서 남쪽으로 차머리를 돌리면 철암이다. 액자 속 흑백 사진으로 들어간 듯 갑자기 주위의 풍경이 색을 잃는다. 산 중턱에 산더미 만큼 쌓인 석탄 더미, 빛바랜 상점들의 간판, 무너져 가는 허름한 사택들…. 한국 근대화의 비가(悲歌)가 처연히 흐르고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36년 처음 탄광이 개발되면서 만들어진 하늘 아래 첫 동네 철암. 전형적인 탄광촌으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지금껏 탄광촌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1940년 무렵 석탄을 실어 나르기 위해 묵호와 철암을 잇는 철암선이 개통됐고, 1955년에는 영주와 철암을 연결하는 영암선까지 열리면서 철암은 황금기를 맞게 된다. 시커먼 탄가루는 돈을 불렀고 그 돈은 사람을 불러 모았다. 길거리의 개도 수표가 아니면 물지 않는다 했고, 집세도 서울보다 높았던 곳이 철암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계속되지 않았다.

이후 황지와 고한을 잇는 태백선 때문에 상권을 황지 등에 빼앗기게 됐고 석탄 대신 석유가 주요 에너지로 자리 잡은 90년대 들어서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게 됐다. 잇따른 폐광에 철암은 죽은 도시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때 3만명이 흥청거리던 철암의 거리는 지금 채 5,000명도 안 되는 인구로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철암역 위의 선탄장에선 아직도 산너머 장성탄광에서 채취된 뒤 터널을 통해 옮겨진 탄들을 선별, 간간이 열차에 실어 보내고 있다. 이미 문닫은 여타 탄광촌이 폐광지역개발지원특별법에 따라 카지노다 스키장이다 해서 변신하고 있는 것과 달리, 철암은 아직도 석탄 산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법의 혜택을 받지 못 하고 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탄광촌의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이유다.

지금 철암 주민들은 갈등한다. “이대로 못 살겠다”는 인식은 같지만 해결을 두고 방법은 다르기 때문이다. 철암 시가지를 지나는 도로를 확장해 개발하자는 쪽과 근대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퇴락한 현실’ 그 자체를 관광ㆍ문화 지대 삼아 새로운 탈출구를 찾아 보자는 쪽이 대립하고 있다. 쉽게 조정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철암에서 장성으로 가는 길 중간에는 구문소란 곳이 있다. 물이란 자고로 산을 만나고 바위를 만나면 돌아가야 하는 법이거늘 이 물줄기는 바위에 구멍을 뚫고 물길을 낸 뒤 큰 소(沼)를 만들었다. 황지에서 내려온 물줄기가 오랜 기간 석회암 바위를 녹여내 구멍을 낸 것.

철암이 우리 근대화의 역사를 그대로 적고 있다면 구문소 주변의 바위는 5억년의 지구 역사를 담고 있다. 삼엽충, 두족류 등 다양한 화석이 발견되는 곳이다. 우리나라 고생대 표층을 연구 관찰할 수 있는 귀중한 장소라고 한다.

태백은 영산(靈山) 태백산과 함께 국토를 동서로,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장강인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로 유명하다. 태백 시내에 있는 황지가 낙동강의 시원이라면 창죽동 금대봉골의 검룡소는 한강의 발원지다.

태백 시내에서 임계 강릉 방면으로 35번 국도를 타고 가다 만나는 삼수령. 이 곳에 내린 빗방울은 그 방향이 어디냐에 따라 한강으로, 낙동강으로, 아니면 동해로 내려가는 오십천으로 흘러든다. 삼수령을 지나 찾아간 검룡소는 단지 이 곳이 한강의 시원이라는 의미를 차치하고서라도 그 모습이 진한 감동을 준다.

이무기가 몸부림치고 올라간 흔적이라는 굽이진 물길이 바위에 새겨져 눈길을 붙든다. 이끼 낀 바위엔 눈이 소복하게 덮고 있는데, 그 추운 골짜기임에도 얼지 않은 물줄기가 콸콸 쏟아져 내려온다. 사철 수온 9도의 물을 하루 2,000톤씩 뿜는다는 검룡소. 그 청정수에 ‘감히’ 입을 댔다. 얼어붙고 마른 입에 따뜻한 온기가 전해져 왔다.

삼수령 인근의 매봉산은 국내 처음으로 고냉지 채소밭이 조성된 곳. 채소밭 위 능선에는 풍력 발전기가 바람을 그리고 있다.

탄광촌의 음식문화는 대부분 고기가 그 중심이다. 춥고 높은 산에서 자란 태백의 한우는 그 고기맛 때문에 서울에서 일부러 가는 이들이 있을 정도로 이름 높다.

태백 시내 황지연못가에 있는 ‘정원(庭園)’이란 곳에서 그 태백 한우의 진미를 맛볼 수 있다. 등심 1인 2만원. 이곳에선 고급스러운 궁중 한정식도 맛볼 수 있다. 1만~7만원. 주인이 처음 고안해 낸 코다리 순대(1만원)는 이 집의 별미다. (033)553-6444

태백=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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