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어느 골목을 걷다가도 꼭 보게 되는 것이 바로 중국 음식점들일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런 중식당들이 모여 있고 식재료 상들과 자잘한 소모품을 파는 상점들이 밀집해 있는 ‘차이나타운’은 어느 나라에나 존재한다.
자생력이 강한 민족성이나 역사가 오랜 문화 등으로 타국에서도 뿌리를 내려 자기네들만의 마을을 만들어 내는 것은 중국인들의 능력이겠지만, 그들의 음식은 특히 차이나타운 건설에 큰 몫을 해 왔다. 대개의 문화가 타문화에 배타적이고 텃새를 부린다지만 입에 맞는 음식으로 점령을 당하기 시작하면 부지불식간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법.
검은 콩 소스를 볶아 내어 국수에 비벼 낸 ‘자장면’은 대한민국 인천 차이나타운의 명물이고, 뭉근하게 고아낸 육수로 맛을 낸 국물에 돈육 완자를 띄운 완당은 프랑스 파리 차이나타운의 명물이다.
바짝 볶아낸 후라이드 라이스나 튀기듯 볶은 초면, 각종 해산물로 만든 진귀한 맛은 미국 뉴욕 차이나타운의 명물로 꼽힌다. 이처럼 그 나라의 국민들의 입을 길들이면서 차이나타운은 전 세계에 생겨났다.
♣ 아침메뉴-커빙에 콩국
지난 연말 부산에 다녀왔다. 극한 추위에도 불구, 나는 차이나타운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는데, 바로 중국 빵을 먹기 위해서였다. 부산역 앞 초량동에 자리 잡은 부산 차이나타운은 사실 러시아타운과 붙어 있어서 더욱 이국적이다.
대로변부터 시작하여 그 뒷골목까지 꽉 메운 차이나 - 러시아 거리에는 러시아 말로 간판을 건 선술집(보드카를 잔으로 파는), 중국식으로 꼬치에 구워 파는 양고기 집, 중국차에서부터 금발 마네킹에 입혀 진열되는 섹시한 속옷 까지 갖춘 잡화상, 환전소 등이 즐비하다.
작은 카트에 각종 보드카와 맥주를 싣고 잔술을 파는 간이 포장마차의 주인은 꽁꽁 언 두 손을 마주 비비며 손님을 기다려 보지만 영하의 날씨에는 쉽지 않은 일인가보다.
골목을 걷던 나는 일전에도 언급했던 ‘신발원’이라는 오래 된 중국 빵 집에 들러 ‘커빙’을 열 개나 샀다.
밀가루 반죽을 얇게 밀어서 접고 접어 만든 납작한 커빙은 냉동고에 얼려 두었다가 하나씩 꺼내 먹으면 부산 차이나타운의 운치가 서울서도 되살아나기에 즐겨 먹는다. 황설탕으로 걸쭉한 단맛을 낸 콩국에 커빙을 푹 찍어가며 먹는 것이 제대로 된 아침밥이라고 주인아저씨는 강조 하셨지만, 시간에 쫓긴 나그네는 한 번도 그리 맛을 보지 못하고 말았다.
달지 않은 팥소를 넣고 튀겨낸 팥빵이나 속이 빈 공갈 빵, 과자처럼 바짝 튀겨 낸 꽈배기 등은 덤으로 사와서 부모님 드렸더니 반가워 하셨다.
♣ 점심메뉴-부추 만두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도 차이나타운이 제법 크게 자리하고 있는데, 골목 입구에서부터 치파오(중국 전통 드레스)를 파는 가게며 붉은 장식이 인상적인 레스토랑들이 꽉 차 있어 이국적이다.
여행 중에 급히 들른 작은 만두 가게에서 돼지고기와 부추로 속을 채운 만두를 먹었었는데, 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맛이 생생하다. 돼지고기 반죽에 정향이나 팔각 향 같은 향신료를 섞어 넣어 묘한 향기가 섞여 있었고, 만두의 접합부를 한입 물어 자국을 내면 쪼르륵 흘러나오는 뜨거운 국물은 자극적이었다.
세계적인 와인 산지에 근접한 도시답게 규모가 작은 중국 음식점임에도 불구 와인이 구비되어 있었는데, 나는 잔으로 파는 백포도주를 마셨다. 새콤한 맛이 강한 저렴한 와인 한 잔이 입 안을 차게 헹궈주면 부추랑 돼지고기를 넣은 만두 한 알을 냉큼 입에 넣어 다시 온기를 채워 넣었다.
♣ 저녁 메뉴 - XO장에 볶은 조개밥
이름이 생소한 XO장은 가짓수 많은 중국 소스의 하나다. 말린 해산물을 다량 넣기 때문에 값이 비싸고, 조금만 넣어도 해산물을 왕창 넣은 듯 요리의 맛이 고급스러워 지는 효과가 있다.
주먹만한 병 제품 하나만 사 두면 잡채에, 볶음 반찬에 두루 이용할 수 있다. 손님에 갑자기 들이 닥쳤을 때 냉동 칸에 보관하던 조개 살을 녹여 찬밥, 갖은 야채와 팬에 볶다가 바로 요 XO장을 넣어 마무리 하곤 한다.
장맛이 다소 진해서 자칫 하면 짜게 요리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하지만, 만약 짜게 요리 되었다 해도 아삭한 양상추에 싸 먹을 수 있으니 괜찮다. 세계에서 가장 물가가 비싸다는 도시 가운데 뉴욕이 빠지지 않는데, 뉴욕의 시장에서 지난 20년 동안 가장 가격 상승 폭이 작았던 메뉴가 바로 중국 음식이라는 뉴스를 보았다.
특히 여기 소개한 볶음밥 같은 단품 요리는 독신자들이 배달 주문하기에 편리한 인기 메뉴로 그 가격은 거의 십 여 년 간 동결되다시피 해 왔다.
가격 동결의 이면에는 중국 노동자들의 낮은 임금이나 초대 이민 세력이 일궈놓은 조직력 등의 이유들이 숨어 있으니, 세계인들의 혀를 항복시켜 온 중국 음식의 저력은 중국인들의 희생과 끈기에 있다고 본다.
세계 어느 나라에 가도 ‘코리아타운’이 생길 수 있으려면 저렴한 가격대의 메뉴와 발 빠른 영업 이전에 다 같이 버텨보자고 하는 한 뜻과 끈기가 있어야 할 텐데, 전쟁이 나면 나라를 위해 싸우겠다고 약속하는 젊은이들의 숫자가 해마다 줄어 들고 있는 판에 과연 ‘코리아타운’의 세계적 전파는 가능할 것인가 생각해 본다.
푸드 채널 ‘레드 쿡 다이어리’ 진행자 박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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