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11일 열린우리당 지도부와의 만찬에서 탈당 의중을 내비친 것으로 드러나면서 당청 관계의 저변이 흔들리고 있다. 연초 개각파동으로 거친 파열음을 낸 당청 관계에 노 대통령의 탈당 의중이 새로운 불씨가 되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와 우리당은 파장을 우려, “대통령이 지난해 연정론을 제기한 후 당에 피해를 주는 것 같아 당 지도부에 탈당얘기를 꺼낸 적이 있다고 말했지만, 지금 탈당을 시사한 것은 아니다”며 적극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참석자들이 전하는 노 대통령의 탈당 관련 언급이 워낙 구체적이고, 이를 부인하는 관계자들도 노 대통령의 의중이 탈당 쪽에 은연중에 기울어 있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어 그 파장은 길고 깊게 퍼질 전망이다.
노 대통령이 지난해 연정론 파동 때도 탈당을 고민했다는 사실은 정치적 고비 때마다 탈당을 하나의 카드로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노 대통령이 언제든지 탈당 카드를 꺼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 한 참석자는 “참석자들이 만류하자 노 대통령이 ‘일단 받아들이겠지만 지방선거 이후에 또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노 대통령의 탈당은 과거시제만이 아닌 현재시제이자 미래시제의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초점은 왜 노 대통령이 이 시점에 탈당 의중을 내비쳤냐는 것이다. 크게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정치적 협박으로 당내 반발과 격한 도전을 제어하기 위한 수로 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실제 지방선거 이후나 다른 정치적 갈등 국면에서 탈당을 선택, 정치판의 변화를 모색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수 있다.
현재로서는 전자의 해석이 유력한 듯 하다. 이날 만찬의 결과가 당청 관계에서 당이 중심이 되도록 하겠다는 노 대통령의 약속과 당청관계의 새로운 구축을 위한 TF팀을 구성하기로 한 점이 이를 잘 말해준다. 지금 판을 깨는 막가는 선택을 하지 않고 서로가 살 수 있는 절충점을 모색한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상식적인 수준을 뛰어넘는 행보를 할 때가 적지 않기 때문에 상황이 안 좋아지면 탈당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만약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패배할 경우 당청간에 책임론 시비가 벌어질 것이고 노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시도하는 흐름이 강해질 수 있다.
노 대통령의 성격상 그런 험한 국면에 끌려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전망이 많다. 오히려 탈당이나 그 이상의 수로 국면을 돌파하려고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노 대통령의 탈당 의중은 현 정치권의 불안정한 구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라는 지적과 우려도 적지 않다.
이동국 기자 ea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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