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미국 전역에서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신작 ‘뮌헨’(국내 개봉 2월10일)은 지금 논쟁의 한 가운데 서있다. 유대인으로서 나치 폭력에 날선 비수를 들이밀었던 스필버그감독은 이 영화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과 대립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점 찾기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는 테러리스트에 대한 일방적 비난도 없고, 정의로운 폭력에 대한 옹호도 없다. 끝 모르게 이어지는 복수에 의해 하나 둘 스러지는 인간의 맨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대며 가혹한 역사의 반복을 애처롭게 바라볼 뿐이다. 영화 속의 현실과 허구는 테러와의 기나긴 전쟁을 펼치는 미국의 현재와 오버랩 되면서 강한 공명을 일으킨다.
어느 쪽도 손들어 주고 싶지 않은 스필버그 감독의 견해는 주인공 ‘에브너’ 역할을 맡은 에릭 바나의 일거수 일투족에 오롯이 담겨 있다. 6일(현지 시간) 오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호텔에서 만난 바나는 에브너 역에 딱히 그 말고 누가 어울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게 할 만큼 에브너다웠다. 웃음 섞인 답변 하나하나가 진지하면서도 신중했고 막힘이 없었다.
“스필버그로 감독으로부터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당연히 놀랬죠. 그러나 왜 저를 택했는지 물어보진 않았어요. 혹시나 그가 깊이 생각하게 되면 마음을 바꿀까 봐서요. 그저 ‘멋진 선택’(Good Choice)이라고 반복해서 말해줬어요.” 너스레를 떨며 영화에 출연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는 그는 “에브너가 급격한 심리 변화를 겪는 캐릭터라 힘들지만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학창시절 미처 접하지 못한 중동사 서적을 뒤늦게 탐독하고, 중동의 정치와 문화, 팔레스타인의 비루한 현실 등을 공부하는 것도 적잖게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고 한다.
“영화 출연 전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을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죠. 영화를 준비하며 많은 책을 보았고 이제는 훨씬 심도 있게 중동 문제를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인화성이 강한 정치적 이슈에 논쟁의 불씨를 던질 수 있는 내용 자체가 큰 부담이 되진 않았다. 그는 오히려 영화가 지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이 결과적으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뮌헨’은 오늘 당장 인기를 모으는 영화보다 훨씬 의미 있는 영화입니다. 시대를 초월한 작품으로 5년쯤 지나도 제가 마냥 자랑스러워 할 영화입니다.”
서른 여덟 살의 적지 않은 나이. 그는 ‘헐크’ ‘트로이’ 등에 잇달아 출연하며 할리우드에서 늦깎이 ‘성공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이는 같은 호주 출신에 동갑내기인 나오미 와츠가 걸어온 길과 궤를 같이한다.
바나는 “호주 배우는 상당한 연기력을 쌓고도 여기서는 신인으로 여겨진다는 것이 장점”이라며 “고향에서 저지른 지저분한 실수를 미국인들은 잘 모르니까 유리하다”고 장난기 섞인 분석도 내놓는다.
시종 유머를 잃지 않는 바나는, 그러나 앞으로 연기에서만큼은 웃음기를 제거하고 싶다고 했다. “코미디 영화는 초콜릿 같아요. 초콜릿을 들고 있을 때는 신이 나지만 먹고 난 뒤 10분만 지나면 후회되지 않나요? 탄탄한 드라마가 갖춰진 영화는 제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잔뜩 차린 만찬과도 같습니다.”
▲ '뮌헨'은 어떤 내용
'72년 뮌헨올림픽' 테러 다룬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복수극
1972년 9월5일 어스름한 새벽 뮌헨올림픽 이스라엘 선수단 숙소에 팔레스타인 테러집단 ‘검은 9월단’이 난입한다. 피가 흥건히 바닥을 적신 인질극은 결국 17명의 목숨을 앗아간 채 21시간 만에 막을 내린다.
그러나 참극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스라엘은 곧 팔레스타인에 대한 피의 보복을 감행한다. 비밀 암살단을 조직, ‘검은 9월단’의 배후 인물 11명의 목숨을 노린다.
모사드(이스라엘 비밀 정보기관)의 정예요원 에브너는 5명으로 구성된 조직을 이끌며 불타는 애국심으로 인간 목표물을 하나씩 제거해 간다. 피는 다시 피를 부르기 마련. 에브너는 자신이 또 다른 보복의 타깃이 돼가는 현실에 소스라친다. 그리고 임무와 윤리 사이에서 방황하며 깊은 회의의 늪에 빠져든다.
로스앤젤레스=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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