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남성 열 명 가운데 한 명은 아내가 없으면 일주일 이내에 폐인이 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스스로 옷 입고 밥 먹고 집안을 정리할 수 있는가를 나타내는 자립지수를 보면 한국 남성의 평균은 57.9, 아내와 자녀와의 관계 형성을 묻는 관계지수는 그것보다 더욱 낮은 53.1이다.
젊었을 때에는 경제활동을 하느라 가정을 돌볼 겨를이 없이 살다 퇴직 등으로 사회의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아내와 자녀가 맺고 있는 견고한 관계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소외당하는 중년 이후 남성들의 심리적 박탈감에 대한 상담 증가도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지난해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남성들의 심리적 위기를 염려하는 이들도 많았다. 특히 가부장제와 남성우월주의에 익숙한 대다수 4, 50대 이후 남성들에게 이러한 현실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역사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되돌릴 수는 없듯이, 이러한 현실은 호주제를 다시 부활시킨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성 평등과 부부 평등은 사회와 가정이 지향하는 일차적 목표이며, 이는 역사발전의 순리이기도 하다. 평등이란 말 그대로 ‘차이는 인정하되 차별은 인정하지 않는’ 것이며, 또한 남성의 무엇을 빼앗아 여성들이 갖겠다는 것도 아님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가부장제는 여성에게 억압이었을 뿐 아니라 언뜻 그것의 수혜자로 보이는 남성들을 오늘의 위기에 몰아넣은 주범이기도 하다. 남자라고, 아들이라고, 장남이라고 부당하게 가해진 사회적, 심리적 억압들이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늘 날 남성들이 겪고 있는 위기의 현실은, 가족 구성원 누구도 결코 행복할 수 없었던 과거의 관습과 제도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모두 평등하게 권리를 누리고 함께 책임을 나누며 대화를 통해 소통하는 민주적이고 평등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때,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다.
이를 위해서 개인의 노력은 물론 사회 전체의 문화와 의식의 전환이 절실하다. 가정과 학교 교육, 기업 문화도 변화해야 한다.
여성들의 사회참여는 증가하고 있으나, 이에서 비롯되는 육아, 가사노동의 문제는 여전히 여성들의 몫으로 남겨 있으며, 야근과 회식으로 이어지는 술자리 문화는 그나마 남성들이 가족 구성원으로 생활할 시간조차 빼앗고 있다. 더 늦기 전에 문제의 근본을 짚어야 할 때가 되었다.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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