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지성 노엄 촘스키와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배우 이영애. 관심사가 전혀 다를 것 같은 두 사람이 최근 비슷한 내용의 편지를 썼다. 수신인은 도널드 창(曾蔭權) 홍콩 행정장관. 지난해 말 홍콩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 반대 시위를 하다 기소된 한국과 일본의 농민ㆍ노동자 14명을 너그러이 봐 달라는 탄원서다.
10일 현재 전세계 1,400여 개인 및 단체가 홍콩 당국에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한국 시위대의 폭력성은 인정하지만 자유 무역의 물결 속에 무방비로 노출된 농민과 노동자의 엄혹한 현실을 감안해 줄 것을 간곡히 요청하고 있다.
반면 사태의 해결을 위해 홍콩을 찾은 민주노총 전재환 위원장의 태도는 이와는 사뭇 달랐다. 전 위원장은 9일 “홍콩 당국의 기소 내용이 사실과 맞지 않다”며 “재판 절차가 길어지는 것은 경찰이 14명의 불법행위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홍콩 당국이 죄가 없는 사람을 붙잡아 두고 있는 것이고, 우리 정부는 자국민의 인권 침해에 팔짱만 끼고 있다는 주장이다.
전 위원장은 “11일 4차 공판에서 공소취하나 무죄판결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홍콩으로 2차 원정대를 파견하겠다”는 말도 했다. 보기에 따라서는 다른 나라 재판부에 으름장을 놓는 것일 수도 있다. 내정간섭으로도 비춰질 여지도 충분하다.
시위로 빚어진 불상사를 또 다른 시위로 풀겠다는 사고는 우리 사회에서는 통할지 모른다.
그러나 38년 만에 처음으로 시위대에 최루가스를 사용했다는 홍콩 경찰에게 이런 식의 대응은 용납할 수 없는 억지이자 한나라의 주권과 사법권을 무시하는 오만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사실을 민주노총은 정말 모르는가.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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