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전격적인 중국 방문은 돈과 미국의 압력에 대한 방어막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의 2000년 5월과 2001년 1월 중국 방문이 경제개발 아이디어 수집에 집중됐고, 2004년 4월 3번째 방중이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 등 새 지도부에 대한 인사 차원이었다면, 이번에는 실리 확보를 위한 행보인 셈이다.
김 위원장은 우선 중국의 대북 경제지원을 구체화하기 위한 협의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지난해 10월 경제분야를 담당하는 우이(吳儀) 부총리를 평양에 보내 향후 5년간 20억 달러(약 2조원) 상당의 대북 경제협력에 나서겠다는 ‘선물’을 주었다. 이어 후 주석이 평양을 방문해 이 약속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후 주석 등 중국 4세대 지도부는 북중 혈맹관계를 중시했던 과거 지도부에 비해선 느슨한 대북 동지의식을 갖고 있다. 대북 경제지원 방식도 과거처럼 무상 보다는 조건을 단 차관 형태의 지원이 대부분이다.
이번 20억 달러 지원 약속도 북한 내 자원개발 등에 중국 기업의 참여를 보장하는 단서가 달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중국은 3월 우리의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를 열어 ‘11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 규획(계획)’을 확정할 예정이다.
2010년까지의 향후 5년간 경제계획이 확정되는 것이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중국의 계획이 확정되기 전에 북한의 입장과 요구를 다시 한 번 중국측에 설명하고, 단속할 필요를 느낀 것으로 분석된다.
김 위원장은 또 북한에 매년 50만톤 안팎씩 지원되는 중국의 중유제공 문제도 협의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입장에서는 중국의 에너지 지원이 생명선과 마찬가지인 만큼 중유 지원물량에 대한 확답도 받아내야 한다. 지난해 12월 노두철 부총리가 중국을 방문, 경제 및 에너지분야 협의를 했던 연장선상에서 협력방안을 구체화하는 노력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핵 문제와 미국의 대북금융제재 문제도 협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달에 열려야 하는 5차 2단계 6자회담은 북한의 달러 위조 논란과 마카오 은행 거래중단 등 미국의 대북금융제재 때문에 개최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미국은 6자회담과 금융제재는 별개라는 입장이지만, 북한은 6자회담이 열리려면 미국이 금융제재 해결을 위한 협상에 응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버텨 평행선을 달렸다.
이런 가운데 김 위원장이 중국으로 움직인 것은 6자회담에 대해 무언가 결심이 섰다는 뜻이라는 해석이 적지 않다. 특히 마카오 은행이 중국의 영향권 내에 있는 만큼 중국 정부가 위조 달러화 유통 전모를 확실히 파악하고 있고, 미국측도 다음주 중 위폐의 증거를 관련국에 제시할 예정인 만큼 북한에게는 시간이 없다.
따라서 김 위원장은 후 주석을 만나 북한의 입장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겠다는 판단을 했을 법하다. 중국도 대북 영향력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미국을 견제하는 차원에서 북측의 요청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북한의 체면을 살리는 선에서 중국이 중재안을 미국측에 제시하고, 6자회담이 재개되는 시나리오도 상정해 볼 수 있다.
신상진 광운대 중국학과 교수는 “경제적, 정치적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북한 입장에서는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을 통해 각종 타개책을 확보하려 노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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