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간 쓰던 수첩을 다른 수첩으로 바꿨다. 옛 직장에서 받은 수첩인데, 수첩 표지에 1992년이라고 쓰여 있다. 펼치면 1992년 달력도 있고, 지금보다 몇 개 빠진 지하철 노선도가 있다. 몇 년 전부터 수첩이 꽉 차 새로 전화번호 하나 적으려면 뒤에 종이를 덧대곤 했다. 그러면서도 귀찮아서 바꾸지 않다가 올해 드디어 수첩을 바꾸었다.
14년 전에 수첩에 이름이 올라와 있는 사람들 가운데 지금도 계속 만나는 사람이 있고, 또 지금은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다.
수첩에 이름을 올리고 전화번호를 적을 정도면 그때는 일로든 마음으로든 꽤 가까운 사람이었을 텐데, 14년이면 작은 세월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나는 두 번 이사를 했다. 전화번호를 바꾸어 쓴 사람들도 나처럼 그렇게 이사를 해서 그럴 것이다.
새 수첩에 번호를 다 옮겨 적어놓으니 말 그대로 이제는 필요 없는 수첩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왠지 지난 시절의 내 시간들이 고스란히 그 작은 수첩 안에 담겨 있는 것 같아 차마 버리지 못하겠다. 책상 제일 밑 서랍에 수첩을 보관한다. 아마 그때의 시간을 추억하듯 자주 꺼내 볼 것 같다.
소설가 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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