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이 시작되었다. 모두가 출발선에 서 있다. 학생들의 방학도 본격적인 궤도에 들어섰다. 시행착오로 얼룩졌던 묵은해를 보내고 청신한 각오로 새해를 맞이해야 한다.
선행학습 신드롬이 학생들의 방학을 지배하고 있다. 각종 선행 학원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한 학기 분량의 예습은 기본이며, 심지어 중학교 입학 전까지 고1 수학을 세 번 돌렸다는 초등학생도 본 적 있다. 남들보다 얼마나 먼저 시작했는지가, 학생과 학부모의 부지런함을 진단하는 중요한 척도가 되었을 정도다.
그러나 공부는, 거처가야 할 학습과정을 일렬종대 해놓고 치달리며 뛰어 넘는 단거리 허들 경주가 아니다. 오히려 하나씩 두들기며 건너가야 하는 돌다리에 더 가깝다. 내실없는 질주는 위험천만하다. 함정에 빠지거나 궁극의 시점에서 무너질 공산이 크다. 젠가(Jenga)라는 보드게임이 유행한 적 있다. 나무 막대를 18층으로 쌓아놓고 아래 블록을 빼내어 위에다 쌓으며 노는 놀이다. 선행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학생들을 볼 때마다 그 게임의 이미지가 중첩된다. 젠가는, 모든 부실한 것들은 필연적으로 무너지고 만다는 생의 철칙을 알레고리적으로 보여준다. 학습도 마찬가지다. 탄탄하지 않은 기초 위에서 실력의 약진은 불가능하다.
과도한 선행학습이 위험한 또다른 이유는 그것이 학생들의 공부에 대한 열정마저 훼손시킨다는 점이다. 소화하기 힘든 선행학습에 오랜 기간 노출되었던 학생들은 공부에 대한 무관심과 냉담함, 심지어 심한 환멸까지도 지니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기본기도 여물지 않은 중학교 1학년 학생이 방학 내내 토플 마무리반에 들어가 시달리곤 하는 경우가 대표적 사례다. 긴 방학이 끝난 뒤 학생이 얻은 것은 영어가 세상에서 제일 지긋지긋한 과목이라는 선입견뿐이었다.
당나라 후기 유미주의(唯美主義) 시인이었던 이상은(李商隱)은 ‘잡찬’(雜簒)이라는 책에서 당대의 여섯 가지 살풍경(殺風景)을 제시한다.
청천탁족(淸泉濯足) 약수터에서 발을 씻는 짓이다. 화상건군(花上乾裙) 아름다운 꽃 위에 빨래를 널어 말리는 행위다. 배산기루(背山起樓) 산을 등지고 집을 지어 산세를 감상할 수 없도록 만든 경우를 말한다. 분금자학(焚琴煮鶴) 거문고를 불쏘시개로 삼아 학을 삶아 먹는 것을 일컫는다. 대화상차(對花嘗茶) 꽃을 감상하면서 술 없이 차만 마시는 행위다. 송하갈도(松下喝道) 청아한 소나무 숲에서 쉬고 있는데 불현듯 들리는 사또 행차 소리다. 눈앞에 놓인 가장 중요한 요체를 놓친 채 주변을 겉돌거나, 심지어 상황을 망쳐버리기까지 하는 안타까움을 시인은 ‘살풍경’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학습에 대한 자기주도권을 놓친 채 남들보다 좀더 먼저 배우는 것만을 능사로 여기는 자기위안적 선행교육은 이 땅의 학생들이 감당하고 있는 우리 교육의 한 살풍경은 아닐까. 오로지 단단한 점검만이 누수를 막고 붕괴를 방지한다. 튼튼한 기초 위에서만 최고의 성과를 쌓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김송은 학습전문가ㆍ에듀플렉스대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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