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나라를 사랑합니다. 다만 군대와 접촉하지 않는 다른 방법으로 국가에 봉사하고 싶을 뿐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대체복무제를 도입할 것을 국회의장에게 권고한 지 11일 만에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구속됐다. 인권단체가 즉각 반발하고 나서는 등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둘러싼 논란에 다시 한 번 불이 붙었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6일 현역입영 통지서를 받고도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입영을 거부한 혐의(병역법 위반)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안모(20ㆍ무직)씨를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안씨는 지난해 10월 충북지방병무청장 명의로 11월 22일까지 102보충대로 입영하라는 현역 입영통지서를 받았으나 입영을 기피한 혐의다.
유치장 입감 직전 경찰서에서 만난 안씨는 “여호와의 증인 성서에 ‘전쟁을 연습지 말라’는 구절이 있다”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라는 교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안씨는 “비록 병역은 거부하지만 우리도 국가에 대한 애정과 존중심은 뒤지지 않는다”며 “국가가 양심을 배려해 준다면 기간이 얼마가 되더라도 다른 방법으로 나라를 위해 일하겠다”고 말했다.
“양심적 병역 거부를 악용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대체복무를 인정하는 국가는 많다”면서 “종교가 사람의 신념과 양심에 관한 것인 만큼 병역기피를 위해 일시적으로 속일 수는 있지만 언젠가 생활하면서 반드시 드러나게 돼 있다”고 덧붙였다.
안씨는 “출소 후 대기업 등에는 취업할 수 없겠지만 그런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양심의 자유를 지키겠다”며 자신의 선택에 만족한다고도 말했다. 그는 “불구속 수사를 받을 수 있었더라면 그 시간 동안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아쉬워한 뒤 “우리와 같은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고 유치장에 들어갔다.
구속영장을 발부한 서울 서부지법 이석웅 판사는 “병역거부자는 실형 선고가 확실하기 때문에 구속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인권위가 대체입법 권고를 내렸지만 입법화가 되지 않은 단계에서 법원이 미리 수용할 수 없고, 지금까지 처리해온 영장처리 기준을 갑자기 바꾸는 것도 문제”라고 밝혔다.
경찰도 “인권위 권고가 있었지만 법으로 공표된 것은 아니지 않느냐”면서 “법과 규정에 따라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그러나 천주교 인권위원회 김덕진 사무국장은 “인권위의 권고가 법적 강제력은 없지만 국가인권정책의 방향을 제시하는 만큼 존중돼야 한다”면서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할 우려가 없는데도 관례대로 구속했다는 것은 우리 사법부가 얼마나 고민 없이 기계적으로 판단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비난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박상진기자 oko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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