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긴급 소집된 열린우리당 지도부 조찬 간담회에서는 청와대를 향한 당의 불만이 그대로 노출됐다. 외견상 결론은 ‘대통령의 인사권을 존중한다. 상호 냉각기를 갖자’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청와대와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당이 스스로 살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게 대부분 참석자들의 이심전심이었다.
이날 간담회 분위기는 정세균 의장의 후원자 역할을 해온 중진그룹의 청와대에 대한 단호한 태도에서 단면을 엿볼 수 있었다. 회의 초반 정 의장이 “이번 개각에 대해 당에서 좀 과하게 반응한 것 같다”며 예정된 청와대 만찬 참석을 권유하자, 임채정 의원을 비롯한 중진들이 격한 반응을 보인 것.
한 참석자는 “평소 점잖기로 소문난 한 중진의원이 ‘지금이 어느 때냐.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정 의장 징발과 유시민 의원 입각 등 이번 개각에 대한 중진들의 불만이 초ㆍ재선 못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간담회에선 청와대가 만찬 일정을 잡아놓고도 서둘러 유 의원의 복지부 장관 내정을 발표한 게 도마에 올랐다. 한 중진은 “당과 협의하겠다고 해놓고 발표한 것은 어떤 경우냐”고 목소리를 높였고, 조배숙 의원도 “당이 철저히 무력화하지 않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하지만 배기선 사무총장과 유기홍 의원 등은 “인사권자의 권한 아니냐”, “이미 결정된 마당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논리를 폈다. 이 과정에서 유 의원 입각의 적절성 문제를 놓고 “문제가 많다”, “도대체 뭐가 문제냐”는 식의 격론이 벌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만찬 참석 여부에 대해선 정 의장과 배 총장 등은 예정대로 참석할 것을 주문했지만 김영춘ㆍ박병석 의원 등은 “개각 발표가 완료된 마당에 굳이 갈 필요가 있느냐”, “당 지도부가 청와대에 가서 훈계나 들을 거면 가지 말아야 한다”는 등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중진들도 불참 쪽에 무게를 실었고, 일각에선 “상임고문들이 가서 대통령에게 당의 뜻을 전달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갑론을박이 이어지자 문희상 전 의장이 아이디어를 냈다. “대통령의 인사권은 존중할 수밖에 없지만, 만찬에서 얼굴을 맞대면 논란이 증폭될 수도 있으니 새 당 의장 선출 이후로 만찬을 연기하자”고 제안한 것. 개각 결과를 수용하는 모양새로 대통령의 권위를 인정하되 만참에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당의 불만도 표시하는 방안이다. 결국 문 전 의장의 제안이 별다른 이견 없이 수용됐다.
한 의원은 간담회가 끝난 뒤 “어제 청와대 성토를 너무 많이 해서 오늘은 더 이상 얘기하지 싫다는 식의 무기력증이 참석자들 사이에 느껴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은 “당청간에 마음이 통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간담회 내내 청와대에 대해선 더 바랄 게 없다는 자포자기의 심정과 전당대회를 잘 치러 우리끼리라도 살 길을 찾자는 절박함이 묻어났다”고 토로했다.
양정대 기자 torc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