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세, 만세, 만세!”
2일 일본 치바(千葉)현 이치하라링카이(一原臨海) 경기장에선 한국말 만세삼창이 울려 퍼졌다. 일본 전역에서 모여든 재일동포 3,000여 명은 관중석에서 부둥켜 안고 환호했다.
일본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전국고교축구선수권대회 본선 2회전. 재일동포 민족학교로서는 유일하게 출전한 오사카(大阪)조선고팀이 기후(岐阜)공고를 3대 0으로 대파하고 16강전에 진출한 것이다.
준우승에 20회 출전 경력을 가진 명문 강팀 기후공고 선수들은 전후반에 각각 2골과 1골을 먹은 뒤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에 앞서 12월 31일 본선 1회전이 열린 치바현 가시와노하(柏葉)공원 종합경기장. 오사카조선고가 아키타(秋田)현 니시메(西目)고를 1대 0으로 물리치자 응원석은 눈물바다가 됐다.
재일동포 민족학교가 84년의 역사를 가진 일본 전국축구대회 본선에서 처음 승리를 거둔 순간이었다. 요미우리(讀賣) 신문 등 일본 주요 언론들은 경기 결과를 체육면 한 구석에 전하면서도 ‘역사적 승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조총련계 오사카조선고의 승리는 오랜 투쟁 끝에 출전 자격을 얻은 지 무려 10년 만에 얻은 것이어서 감격이 더했다. 일본 교육당국은 1990년 대 초반만 하더라도 동포학교가 각종 학교라는 이유로 전국 규모 본선에 참가하는 것을 허가하지 않았다. 이 같은 제한은 자라나는 동포 청소년들에게 좌절과 함께 커다란 상처를 입혔다.
유기봉(兪基奉) 오사카조선고 교장은 이와 관련, “90년 일본 고교종합체육대회 예선에 참가한 우리학교 배구팀이 1차전에서 승리했는데도 대회 관계자가 어차피 본선에는 못 나갈 테니까 다음 경기는 져주라고 강요해 학생들이 크게 상심한 적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를 보다 못한 동포들과 일본 시민단체들은 민족학교의 전국대회 출전권 보장 운동을 펼쳤고, 결국 94년 일본 고교종합체육대회, 96년 일본 전국고교축구선수권대회의 문이 열리게 됐다. 오사카조선고는 2000년에도 이 대회 본선에 올랐지만 1회전에서 패배했다.
동생이 지난 5월 백혈병으로 숨져 “동생을 위해 이기고 싶다”고 다짐했던 주장 안태성(安泰成)은 경기 후 “꿈 같은 승리”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제가 고교생이었던 80년대에는 전국대회는 별 세계의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강민식(康敏植) 감독은 “오사카 지역과 조선고교의 대표로서 거둔 커다란 승리”라고 말했다.
이제 오사카조선고의 연승 돌풍은 일본 전체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특히 3일 16강전에선 과거 6차례나 선수권을 차지한 우승 후보 나가사키(長崎)현 쿠니미(國見) 고교와 맞붙는 빅게임이 벌어진다.
조총련계 출신으로 북한축구대표팀에서 활약하고 있는 3명 중 1명인 양용기(24ㆍ일본프로축구 J리그 2부팀 센다이) 선수는 오사카조선고 동문이다.
도쿄=김철훈 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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