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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르포 직접해봤더니/ 관악우체국 집배원과 봉천동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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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르포 직접해봤더니/ 관악우체국 집배원과 봉천동 동행

입력
2006.01.02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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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술년 새해엔 즐거운 소식, 가슴 따뜻한 소식 많이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막 ‘종이편지’를 썼던 게 언제였는지조차 기억하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지만 전국 1만7,000여명의 집배원들은 오늘도 수십 ㎏이 넘는 행낭과 함께 소식에 목마른 이들을 찾아 골목을 누비고 있다. 특별 비상체제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관악우체국 백현호(45) 팀장의 하루를 동행하며 집배원들의 눈에 비친 연말연시 풍경을 들여다봤다.

지난달 29일 오전7시 서울 관악우체국 3층 우편물류과 집배1실. 날이 밝으려면 아직 멀었지만 벌써 수십 명의 집배원들이 순로(巡路)에 맞춰 번지와 호수별로 편지와 소포를 분류하느라 분주하다. 관악우체국에는 동ㆍ번지별로 나눈 100여개의 집배구가 있고, 이를 110여명의 집배원이 담당한다. 요즘은 연하장과 대학입시원서가 몰려 집배원 1명이 하루에 많으면 3,000~4,000통 정도를 처리해야 한다.

20년간 이 곳에서 근무한 베테랑 팀장의 손놀림은 집배원 중에서도 단연 ‘예술’이다. “수신인만 보면 가족은 어떻게 되고, 언제 어디에서 어디로 이사했는지 정도는 금방 떠오르지요. 오래 하다 보면 그렇게 됩니다.”

이메일의 확산으로 일반우편물은 줄었지만 택배나 소포 배달은 크게 늘었다. 백 팀장은 ‘기생충알 김치 파동’이 불거졌을 때는 시골에서 보내온 김치 꾸러미가 유난히 늘어나 배달에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오전 10시가 넘어 우편물과 소포 분류를 끝낸 백 팀장이 전화기를 든다. 소포 수신자가 집에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 부피가 큰 소포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게 되면 그대로 짐이 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옆집에 부탁하면 잘 받아주기도 했는데 요즘은 어디 그런가요.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를 정도인데요.”

이른 점심을 먹고 11시부터 배달에 나선다. 첫 배달지는 봉천5동 현대시장 부근. 백 팀장은 겨울이라 오토바이를 타면 무릎이 시리다며 연실 무릎을 문지른다. 오토바이가 지급되지만 여전히 발품이 많다. 더욱이 그의 담당 봉천동은 온통 오르막이고 골목이고 계단이 많다. 재개발로 대부분이 아파트촌으로 변했지만 아직 옛 모습 그대로인 곳도 적지 않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이다.

“아줌니 보고자퍼 왔지요. 계단 얼었을지도 모르니 발 조심하시구요.” 돌계단 위 작은 주택에 홀로 사는 할머니에게 편지를 건네는 백 팀장이 살갑게 말을 붙인다. 등기우편을 받은 중국음식점 주인 아주머니는 추운데 고생한다며 따뜻한 음료수를 준다. 백 팀장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퍼진다.

그래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분명히 사람이 있는 것을 아는데도 문을 안 열어주거나, 귀찮다는 듯이 화를 내며 얼굴을 내미는 경우도 적잖이 볼 수 있다. 아파트의 한 주민은 집배원이라고 하니 “집배원인지 볼 수 있게 대문 렌즈 앞에 서 보라”고 한다. 사회 전체가 각박해졌으니 누굴 탓할까 하면서도 그는 “왜 서운한 마음이 들지 않겠나요”라고 했다.

오후 6시 관악구와 동작구 사이의 판자촌을 끝으로 오늘의 배달은 끝났다. 달동네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간다. 하지만 그의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시 우체국으로 돌아가 내일 배달할 일반우편물을 분류해야 한다.

“새해 희망이요? 제가 건네는 편지 받으면서 활짝 웃는 사람들이 올해보다 늘어나야지요. 아, 또 있어요. 편지 쓰실 때 우편번호와 주소 다시 한번 확인하는 거 잊지 마세요. 좋은 소식이 늦게 가거나 아예 가지 못하는 수도 있으니까요.”

박상진기자 oko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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