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를 타면 속이 안 좋아 고생한다는 ‘수영 신동’ 박태환(17ㆍ경기고1). 중국 캐나다 스웨덴 러시아 독일 남아프리카공화국 호주 일…. 지난해 숨가쁜 해외 일정을 마치고 휴식기에 들어간 지금, 그의 낯빛은 아직도 비행기에서 내리지 않은 것처럼 불안하고 영 어색해 보였다.
“올 해 좀 잘하니까 여기 저기서 상도 주고 인터뷰 요청도 많아졌어요. 근데 저 아직 많이 부족해요. 비행기 좀 그만 태우셨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때 메달 따면 그 때 실컷 태워주세요.”
박태환은 지난해 한국 수영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한국 신기록을 6개나 작성했고 마카오 동아시아대회 등 국제대회서 4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울산 전국체전에서는 4관왕에 올라 대회 최우수선수(MVP)에 등극했다. 연이은 금빛 물살에 별명도 박테리아(이름이 비슷해서 불림)에서 수영 신동으로 ‘격상’ 됐다.
박태환의 주종목은 자유형 1,500m. 마카오대회에서 시험삼아 처음으로 출전해 15분00초32의 아시아 신기록을 세워 은메달을 따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호주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이안 소프가 같은 나이에 세웠던 것보다 훨씬 빠른 기록으로 2005년 세계랭킹 7위에 맞먹는다. 수영 관계자들의 가슴이 설렌 건 당연했다. 유운겸 대표팀 감독은 “이 기세라면 15분 벽 깨는 건 시간 문제이고 올림픽 메달 획득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당장 과제는 15분대 돌파. 박태환은 턴 동작에서 군더더기를 없애는 훈련에 집중하고 있다. 1,500m에서 턴 동작은 모두 29번이 나온다. 턴을 할 때마다 0.5초씩만 줄이면 충분히 세계 정상급에 들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180cm에 65kg. 다섯 살 때 수영을 시작해 천식을 고쳤다는 박태환은 키에 비해 몸무게가 적다. 근육이 별로 없으니 파워가 부족하다. “아빠는 몸이 좋으신데 아무래도 고전무용을 하신 엄마를 닮은 것 같아요.
고기 열심히 먹어 70kg까지는 찔 거에요.” 박태환은 국내에서 함께 경쟁하면서 기록을 향상시킬 만한 라이벌 선수가 없다는 점을 아쉽다고 했다. “옆에 이안 소프나 다른 나라 선수들이 함께 물살을 가른다고 상상하면서 훈련하는 수 밖에 없죠 뭐.”
지금 수영 말고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안쓰러운 답이 나온다. “가족들과 도란도란 얘기하면서 푹 쉬고 싶어요.” 그런 박태환의 얼굴이 12월 도하아시안게임 얘기가 나오자 활짝 펴진다. “말해 뭣해요. 당연히 금메달 따야죠. 하하.”
김일환 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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