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고교생 아들의 불어 교사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남의 도움을 받은 숙제는 용납될 수 없고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면 징계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영어를 불어로 번역하는 숙제의 일부분을 자동 번역을 해주는 웹사이트를 이용해 한 것이 잘못이었다. 제출한 숙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안 교사는 아들에게 주의를 주고 부모에게도 통보했다.
미국 대학에서는 시험 부정이나 숙제 표절을 매우 엄하게 다룬다. 최악의 경우 숙제 한번 잘못 베낀 탓에 퇴학을 당하기도 한다. 졸업 후 몇 년이 지나더라도 부정행위가 밝혀지면 졸업이 취소된다.
세계 최대 유통업체 월마트 창업자의 손녀가 대학 재학시절에 룸메이트에게 돈을 주고 숙제를 시킨 사실이 적발돼 졸업 취소가 된 것이 최근 한국 언론에 알려지기도 했다. 부모가 거금을 기부하면서 딸의 이름을 따서 만든 스포츠 경기장은 아예 이름을 바꿔버렸다.
●지성의 전당 대학서도 커닝
4년 전 버지니아대 물리학과의 한 교수가 학기말 과제물을 채점하다가 무더기로 베낀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명예위원회에 통보했다. 대학생들로 운영되는 독립적인 기구로 위원장 역시 학생인 이 위원회는 두 학기에 걸친 조사 끝에 48명의 학생을 제적시켰고, 제적당한 몇몇 학생들이 법원에 제소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미국 주립대학 순위 2위인 이 대학의 학생들은 부정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고 감독 없이 시험을 친다. 서약에 있는 유일한 벌칙은 퇴학이다.
물론 미국의 모든 대학이 이렇게 운영되는 것은 아니며, 통계에 의하면 시험 부정이나 숙제 표절 건수가 해마다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하지만 한 과목의 과제물을 베낀 것만으로도 48명의 학생을 한꺼번에 퇴학시킬 수 있는 곳이 미국 대학이다.
학문적 정직성은 대학의 존재 이유이며, 교수나 학생은 명예규범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여간 간 큰 사람이 아니고는 시험 부정이나 논문 날조는 엄두 내기조차 힘들다.
눈을 돌려 국내의 실정을 보자. 몇몇 대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나는 커닝을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서약서를 교내에 붙이기도 하지만, ‘커닝은 순간이고 성적표는 영원하다’고 커닝은 갈수록 심해지고 그 기법은 날로 대담해져 가고 있다. 심지어 초등학생조차 휴대전화를 이용해 시험 부정행위를 하다가 적발되기도 한다.
부정행위에 대한 무감각은 사회인이 되어서도 계속되며, 이러한 도덕적 해이가 얼마나 나쁜 것인지 인식하지 못하고 자연스레 빠져든다. 심지어 도덕적으로 모범을 보여야 할 목회자가 남의 것을 베껴서 매주 설교를 하다가 적발되어도, 교인들은 목회자가 바쁘다 보면 그럴 수 있다는 식이고 목회자 자신도 그러한 행위가 잘못이라는 인식이 없다.
황우석 교수의 논문 조작 파문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일부에서는 ‘빨리빨리’ 문화와 업적 위주의 잘못된 가치관 속에서 터질 수밖에 없었던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회와 경제를 여기까지 끌고 온 데는 ‘빨리빨리’문화의 공(功)을 간과할 수 없다. 주력 산업인 정보 통신 전자 업종에서 속도는 매우 중요한 경쟁력이다.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한 원동력의 한 축이 도덕 불감증과 동일 개념일 수는 없다. 중동에서 훌륭한 성과를 낸 건설회사들도 한국에서는 그러지 못한 경우가 많다. 같은 ‘빨리빨리’로 만든 건축물이지만 결과는 매우 다르다.
●새해엔 정직과 신뢰로 가자
문제는 우리의 마음이다. 그동안 공들여 쌓아올린 것들을 비하할 필요도 없고 사회 전체가 스스로 여기에 얽매일 이유도 없다. 다른 나라가 뭐라고 해서 창피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부끄러운 것이다.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 모두의 화두는 정직과 신뢰가 되었으면 한다. 이는 우리의 명예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김민숙 미국 로드아일랜드주립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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