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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중독 딛고 10여명 새출발… 떡공장 '보리떡 다섯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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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중독 딛고 10여명 새출발… 떡공장 '보리떡 다섯개'

입력
2005.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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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후 인천 남동구 논현동 남동공단 인근 떡 제조업체 ‘보리떡 다섯개’. 쌀을 씻어 분쇄기에 넣는 직원들의 동작이 날래다. 쌀가루를 받아 찜통으로 옮기니 금새 직육면체 모양의 떡이 김을 뿜으며 나오고, 성형기를 통과하자 한눈에도 먹음직한 가래떡이 탄생한다. 100여평의 공간은 떡에서 나오는 온기와 직원들의 열기가 한겨울 추위를 잊게 하는, 여느 떡집의 연말연시 풍경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떡공장을 휘저으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장정들의 사연을 알게 되면 이 곳에서 만드는 떡은 ‘희망의 떡’이 된다.

앞치마를 두른 모습이 어색하지 않은 이들 10명은 모두 이른바 ‘전과자’. 그것도 아직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불온시되는 범죄 중 하나인 마약류 전과자다. 대부분 10~15년 간 마약을 접했고, 교도소 수감 이력도 짧지 않다.

“실명과 얼굴이 기사에 드러나도 상관이 없을까요?” 조심스러운 질문에 신동우(38)씨가 선뜻 고개를 끄덕인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 부담되지만 희망을 찾아 새 출발을 하고 있으니 선입견을 갖지 말고 격려해 줬으면 좋겠어요.”

신씨는 중학교 때 본드를 흡입하면서 마약의 수렁에 빠졌다. 그 후 대마초 히로뽕 등 손을 대보지 않은 게 없다. 교도소도 낯설지 않게 됐다. 출소할 때마다 병원을 다니며 새 출발을 다짐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전과자로서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출소 후에도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마약 판매에 나섰다가 다시 교도소로 돌아가는 악순환이 이어졌습니다.” 어렵게 만난 인연으로 결혼을 했지만 모범적인 아버지는커녕 아버지로서 아이들 인생에 장애가 될까 걱정만 됐다. 그렇게 15년이 흘렀다.

“이렇게 내 인생은 비틀거리다 끝나버리는가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4년 전 ‘소망을 나누는 사람들’을 찾기 전까지는요.” 그는 인천에 있는 마약치료 재활공동체 ‘소망을 나누는 사람들’에서 희망을 찾았다. 신용원(41) 목사 주도로 설립된 이 쉼터는 수십 명의 마약 전과자들이 경제적 자립을 위해 새 출발을 준비하는 곳. 신 목사는 자신도 과거 수 년간 마약을 접했기 때문에 땀 흘리며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이들에게 가장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신 목사는 “사회적인 냉소 때문에 이들이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씨 등 출소자 10명이 ‘보리떡 다섯개’를 연 것은 지난해 3월. ‘전과자들이 만든 떡이라 손님들이 외면하면 어쩌나’하는 고민이 많았다. 역시 쉽지는 않았다. 1억원을 대출 받아 공장을 차리고 국산 유기농쌀과 흑미를 재료로 가래떡 찰떡 인절미 백설기 약식 등 다양한 상품을 선보였지만 직원들의 과거 경력을 알고는 납품을 꺼리는 업체들이 적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고 교회와 기업체 문을 두드렸고, 하나둘씩 결실을 맺었다. 신 목사는 “이익을 많이 남기지는 못해도 10식구 입에 풀칠하는 수준은 된다”며 “그래도 이 정도면 기적 같은 일”이라고 했다.

연말은 떡 수요가 많아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일은 자정까지 이어진다. 공장 입구 좌우에 수북이 쌓였던 배달상자가 떡으로 채워지면 이들의 얼굴엔 기쁨이 번져간다. 자신들이 만든 떡이 팔리는 기쁨은 물론, 아픔을 간직한 수많은 마약 중독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생산주임 최윤섭(33)씨는 이제야 행복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나를 받아주는 곳이 아무 데도 없다는 생각에 절망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행복이 뭔지 알 것 같아요. 내가 만든 떡을 사람들이 맛있다고 할 때입니다. 새해에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떡을 만들고 싶어요.”

인생의 나락까지 떨어졌던 10명의 장정들이 건네는 새해 인사는 이렇다. “이제는 절망을 넘어 희망을 찾아갑니다. 우리도 희망을 일궈 나가는데 보통 사람들이야 무엇을 못 하겠습니까.”

인천=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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