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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신년특집-신춘문예/ 한국일보 동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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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신년특집-신춘문예/ 한국일보 동시 당선작

입력
2005.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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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역 / 박성우

엄마가 마른 미역을

그릇에 담는 모습

지켜 본 뒤에야 알았어.

바짝 마른 미역,

발등에 물이 닿기만 해도

바다 속에서 살랑살랑 놀던

자신의 푸른 옛 모습,

고스란히 기억 해 내고

풀어낸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

말랐던 제 몸을

더듬어 낼 수 있었던 것은

마른 줄기 안에 바다를

꼭꼭 숨겨 두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

엄마가 몇 번이고

맑은 물에 미역을 헹구어 내도

바다 냄새를 풍기는 푸른 미역이

내 생일을 풀어내고 있었어.

■ 동시 부문 "선명한 이미지로 느낌 진솔 표현"

좋은 동시를 가려내는 과정은 선자(選者)에게 늘 이중의 고민을 떠안게 한다. 문학의 다른 장르와 달리 아동문학의 특성상 작품의 완성도와 더불어 동시의 주된 독자인 아이들의 눈높이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동시 부문에 응모한 많은 응모자들도 창작 과정에서 그와 일맥상통하는 고민을 한 흔적이 역력했다.

최종심에 오른 다섯 명의 작품 중 두 명의 작품이 단연 두드러졌다. 먼저 이정림의 ‘돌하르방’은 시적 완성도가 가장 뛰어난 작품이었다. 돌하르방의 웃는 얼굴을 통해 역동적인 바다의 이미지를 생생하게 건져낸 솜씨가 일품이었다.

여러 차례 반복하여 읽을수록 시의 느낌이 더욱 살아나는 좋은 시였지만, 다소 비약이 심하고 성인적 시선이 노출되어 아이들이 읽을 때 과연 얼마만큼이나 공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런 경우 좋은 시는 될 수 있지만 좋은 동시가 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박성우의 ‘미역’은 휠씬 쉽게 읽히는 시였다. 생일날 엄마가 물에 담가 놓은 미역을 통해 바다를 연상하는 이 동시는 ‘미역’과 ‘바다’라는 사물의 거리가 가깝듯이 시상의 전개가 매우 자연스러웠다. 일상의 체험을 시화(詩化)하는 과정에서 결코 번뜩이진 않지만 매우 선명한 이미지로 자신의 느낌을 진솔하게 드러내어 독자들의 마음을 저절로 움직이게 할 만한 동시였다.

무엇보다도 미역이라는 친근한 사물을 매개로 생일날의 설렘과 바다의 생기를 아무런 과장 없이 연결한 아이다운 시선과 상상력이 미더웠다. 그래서 기꺼이 올해의 당선작으로 올렸다.

최종심에서 함께 논의된 풍성희의 ‘시래기’원나연의 ‘엄마도 나처럼’이해완의 ‘물의 여행’도 충분한 가능성을 지닌 작품들이었다. 정진을 바란다.

심사위원= 정두리 신형건

■ 동시 부문 당선 박성우씨 인터뷰

박성우(34)씨는 5년 전 시로 등단, 시집(‘거미’,2002, 창비)를 낸 시인이다. 동시는 하지만 그의 꿈이라고 했다. “굳이 외우려고 하지 않아도 평생 기억되는, 물처럼 자연스럽고 노래처럼 편안한 동시를 쓰고 싶었어요.” 8년간의 도전 끝에 이룬 성과에 그는 “멋쩍고 다른 분들에게 미안하기도 하지만 스스로에게 당당하고 싶었습니다. 동시와 시는 다르잖아요.”

당당함에 대한 그의 집착은 유년의 한 약속에 연유한다. “산골 초등학교를 다니던 어느 하루, 담임선생님이 검은 파일에 갱지를 엮어 주시는 겁니다. 시를 쓰라는 것이었죠.” 남자애들 어울려 공 차고 여자애들 고무줄놀이 할 때 늘 외톨이로 그네를 탔다는, 그게 가장 편했다던 그는, 그 날 그렇게 세상으로부터 첫 호명을 받았고 지금도 생애 최고의 하루로 기억하고 있다. “선생님이 제 일기장을 눈여겨보신 것 같았어요. 그 파일에 쓴 저의 첫 시 ‘개구리’를 지금도 기억해요.”

틈틈이 써서 퇴고해둔 동시가 모두 66편이라고 했다. “시를 쓰다가 한번씩 (느낌이)오면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동시만 쓰죠. 후배의 아이들에게 그 시들을 보여줘요.(그는 노총각이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시와 제가 좋아하는 시가 닮아가요.”

문단 선배인 김용택 안도현씨 등이 장가 들라고 떠맡긴 덕에, 그는 지금 ‘감투’를 쓰고 있고, 그래서 무지 바쁘다. 하지만 “어서 멋진 동시집 만들어서 선생님 찾아뵐 생각입니다. 그 호명에 더 늦기 전에 야무진 목소리로 대답해야지요.”

■ 동시 부문 박성우씨 당선소감

장독대에 소복소복 쌓인 함박눈이 동치미 익는 소리 들으려고 한쪽 귀를 장독 뚜껑에 따악 붙이고 있습니다. 앞니 빠진 외할머니처럼 씨익 웃는 기와지붕, 고드름이 나란히 매달려 키를 재어보고 있는 동안 나는 해야 할 일들을 밀쳐둔 채 골목 악동들과 어울려 눈사람 친구를 둘이나 만들었습니다.

구백여 채의 한옥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전주 한옥마을. 은행나무 골목의 행랑채 하나를 지인이 선뜻 내줘 저는 지난 해 봄부터 거처를 옮겼습니다. 청소부로 일하는 홀어머니집을 오가며 마당 귀퉁이마다 고추와 호박과 오이와 수세미와 토마토 같은 풋것들을 싱싱 키우며 나는 출근을 하고 밤이면 빈둥빈둥 책을 읽거나 원고지 앞에서 끙끙거리며 앉은뱅이책상에 앉아있었습니다.

구십년대 말부터 동시 부문 신춘문예에 원고를 몰래몰래 보냈으니 부끄럽지만 정확히 칠전팔기입니다. 불쑥 당선통보를 받고 나니, 기쁨도 잠시 동시 쓰기에 용맹정진 했을 다른 응모자들께 미안한 마음이 앞섰습니다. 앞으로도 동시 쓰는 일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말로 죄송한 마음 대신합니다.

세상에 단풍 든 마음을 두고두고 걸러낼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님과 한국일보사에 깊이 감사드리며 늘 애정 어린 눈빛으로 지켜봐주시고 돌봐주시는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님들께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당신은 제가 살아야 할 이유입니다.

▦ 박성우(朴城佑)

1971년 전북 정읍 출생.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동대학원 박사과정 재학 중.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현 전주전통문화중심도시추진단 홍보팀장. 전주대학교 평생교육원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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