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삽살개보존회 한국일(38) 육종연구소장은 7년째 삽살개에 푹 빠져 산다. 경북 경산시 하양읍에 있는 3,500평의 사육장에서 600여 마리의 삽살개를 돌보는 손길이 어린 자식을 대하는 듯하다. “머리를 온통 뒤덮은 털 사이로 언뜻언뜻 내비치는 선한 눈망울이 얼마나 정겨운지 아십니까? 요놈들이 장난이라도 칠 것처럼 혀를 쭈욱 빼물고 있을 때면 도저히 개라는 생각이 안 들어요.”
2006년 병술년을 맞는 한 소장의 감회는 남다르다. 개의 해이기 때문이다. 특히 삽살개(삽사리ㆍ천연기념물 제368호)는 ‘액운(살ㆍ煞)을 쫓는다(삽ㆍ揷)’는 의미를 가진 영물로 오랫동안 우리 민족의 사랑을 받아온 토종견이다. 한 때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토종개를 지키려 애쓰는 이들 덕분에 되살아나고 있다.
한 소장은 1988년 해병대에서 군견병으로 복무하면서 개와 인연을 맺었다. 제대 후에도 서울, 경기 수원, 경북 왜관의 애견훈련소에서 개 사육과 훈련을 담당했다. 그러다 99년 1월 ‘삽살개 지킴이’로 유명한 경북대 유전공학과 하지홍 교수를 만나면서 삽살개에 빠지기 시작했다. “사육 전문가를 찾는다는 얘기를 듣고 호기심이 일어 무작정 찾아갔습니다. 그 전까지는 잡종 삽사리를 몇 번 본 적은 있지만 자세히 알지는 못했거든요.”
사육장에서 개들을 마주하고는 차마 발길을 뗄 수 없었다. 200마리가 지붕도 없이 녹슨 철망 우리에서 겨울비를 맞고 떨고 있었다. 그 해 6월 장마 때는 개 진드기가 퍼져 50마리가 폐사할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다. 후배 2명을 끌어들여 개들과 동고동락을 시작했다. “견사를 보수하고 위생에 힘쓰다 보니 죽는 숫자가 크게 줄어 얼마 후 개체수가 800마리까지 불어나더군요.”
다음 과제는 품질을 높이는 일. 경북대 동물유전학연구실과 함께 DNA 검사, 단백질 분석 등을 통해 우수한 혈통의 순종으로 끊임없이 개량해 나갔다. 본인도 전문적인 연구를 위해 2002년 경북대에서 석사학위(유전공학)를 따고 현재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삽살개 분양과 등록업무도 그가 맡은 일이다. 분양 대상자 선별에서부터 고유번호 부여, 마이크로칩 부착, 데이터베이스 작업까지 잡종화를 막기 위해 번거롭지만 철저하게 관리한다. “분양한 개들이 최상의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아파트 거주자는 제외합니다. 분양한 사람은 협회 회원으로 등록시키고 일정 기간 잘 키우고 있는지 검증을 끝낸 후에 혈통증서를 발급하지요.”
그래도 열성 회원이 많다고 한다. 정 많은 삽살개에 눈길을 빼앗기면 다른 개는 거들떠 보지도 않기 때문이다. “수천 만짜리 외국 개 여러 마리를 키우던 회원 한 분은 삽살개를 분양받고 나서 그 개들을 다 팔아 버렸어요. 지금은 20여 마리까지 늘어나 동네에서 쫓겨나게 생겼답니다.”
한 소장은 삽살개 보급은 이제 막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토종개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소중한 유산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정부 지원으로는 사육비를 감당하기에도 부족해 연구에 신경 쓸 여력이 없습니다. 일부 의원을 중심으로 ‘삽살개보호육성법’을 제정하려는 것도 그 때문이지요. 모두의 관심과 응원만이 우리 개를 살려낼 수 있습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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