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촤르르르 척, 촤르르르 철썩~"
바다가 찬바람에 성이 났나. 한 길은 여반장으로 넘기는 파도가 갯바위를 연신 찰지게도 쳐 댄다. 먹먹한 가슴을 움켜쥐고 달려간 바다. 더 이상 담고 있다가는 터져버릴 것 같아 앞 뒤 가리지 않고 달려온 겨울 바다. 그리고 마침내 마주한 쪽빛 바다….
분명 처음은 아닐진대, 바다는 언제나 벅차게 다가온다. 한 눈에 담을 수 없는 크기 만으로도, 하늘빛 진하게 고아낸 저 깊은 물색 만으로도 마음속 설움, 분노 따위를 하찮게 만들어 버리니.
넘실대는 파도는 맺힌 응어리 훌훌 털고 가라고 내 가슴을 두들기듯 몰아쳐 온다. 귓볼을 에는 겨울 바다 바람은 또 어떤가. 눈가에 맺힌 뜻모를 눈물을 속절없이 날려버린다. 굴러 떨어질 새도 없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았다. 바다로 달려 오게 한 먹먹함은 한없이 작아지고, 겨울 해풍이 시원하게 쓸고 간 가슴은 새 것 가득 품을 수 있게 깨끗이 비워진다.
어느덧 12월 말. 한 해가 저물었다. 지난날의 회한을 털어내고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내 안의 나를 다독이는, 일 년 중 가장 진지해지는 시기다. 겨울 바다로 마음이 절로 향하는 이유다.
동해하면 대부분 강원도의 동해를 이야기한다. 설악의 그림자 드리운 속초 앞바다, 강릉의 경포대, 정동진 등이 먼저 떠올려질 것이다. 하지만 동해 해안길은 경상도로 이어지면서 보다 아기자기한 멋을 연출한다. 수려한 해안 드라이브길을 따라 쪽빛 바다와 눈부신 모래밭이 빈틈없이 줄지어 나타난다. 서울에서 좀 더 멀어졌다는 것을 빼고는 강원의 동해에 전혀 뒤지지 않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바다가 남부 동해, 경북의 바다다.
울진에서 경주에 이르는 경북의 동해안을 찾았다. 강원 고성에서 내려오는 동해안 7번 국도는 울진에서 내처 해안을 끼고 달음질 친다. 7번 국도만 타고 가도 바다 구경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 좀더 욕심을 부려도 좋다. 7번 국도에서 곁가지를 친 해안 도로로 옮겨 타면 바닷길이 주는 진한 감동을 보다 가까이 느낄 수 있으니.
울진 남부IC 인근 왕피천을 넘으면 관동팔경 중 하나인 망양정이 서 있다. 망양정에서 넓은 바다를 감상한 뒤 해안을 따라 남으로 달렸다. 백사장과 암벽을 끼고 해안 도로로 이어지면서, 갯바위를 치고 넘어 오는 파도가 차창을 두들겼다.
오산리를 지날 때쯤 마을 앞 도로변에는 늙은 아낙 둘이서 말갛게 씻어낸 오징어를 널고 있었다. 겨울 해풍에 오징어를 말려 꾸덕꾸덕한 피데기를 만든다고 한다. 태양빛 스며든 눈부심으로 오징어는 빛이 났고, 오징어를 내다 너는 그들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망양휴게소를 지나면 쭉 펼쳐진 기암괴석의 갯바위들이 부르는 파도의 합창을 감상할 수 있다.
평해읍 초입에선 또 다른 관동팔경인 월송정을 만날 수 있다. 인근의 직산항으로 들어서면 후포항까지 좁지만 한적해 바다 내음 짙은 해안 도로를 탈 수 있다. 중간에 있는 거일항은 울진군이 대게의 원조 마을로 지정한 곳이다. 원조는 또 있다.
‘고래 불로’와 ‘영덕 대게로’ 등으로 명명된 영덕의 해안길은 30km 내내 바다와 떨어지지 않고 이어진다. 드라이브의 시작은 병곡의 고래불해수욕장. 대진해수욕장 - 축산항을 거쳐 만나는 경정리는 영덕군이 지정한 대게의 원조 마을. 대게와 관련한 울진과 영덕의 신경전은 과연 대단하다. 좁은 해안길은 계속 이어져 풍력 발전기가 이국적인 해맞이 공원을 지나, 대게로 유명한 강구항까지 이어진다.
동해를 타고 쭉 뻗어 내려오던 7번 국도는 포항에서 31번 국도에 바통을 넘겨준다. 구룡포에서부터 경주의 감포를 지나 울산 시내로 들어가는 31번 국도는 다시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뜬다는 간절곶으로 비어져 나왔다가 기장으로 해서 14번 국도와 합해진다.
영일만을 끼고 월포해수욕장 - 칠포해수욕장 - 영일만 신항 - 송도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해안길과 포스코 - 호미곶 - 구룡포로 이어지는 해안길은 포항의 짙푸른 바다를 감상하기 좋은 길. 한편 경주 지역으로 넘어가 감포로 향하는 해안길은 우거진 갈대 숲과 어울려 한층 평화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울진·포항=글·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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