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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한덕수 경제부총리께

입력
2005.12.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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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들여 만든 새해 경제운용계획이 썩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 섭섭한 마음도 들겠지만, 결코 쉽지않았던 한해 농사를 대과 없이 치러낸 것 만으로도 위안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연말 정가의 화두로 떠오른 개각 문제에서도 경제팀은 거론되지 않으니 크게 신경쓰실 일도 없을 것이고요. 그래도 마냥 덕담만 늘어놓기는 민망합니다.

지난 3월 부동산 투기의혹에 휘말려 낙마한 이헌재씨의 뒤를 이은 부총리는 취임일성으로 “정책의 일관성을 위해서라면 무색무취하다는 비판도 감수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늘이 넓고 두터웠던 전임자를 배려한 발언이기도 했지만 신중한 몸가짐으로 소문난 부총리의 처세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었죠. 더구나 노무현 대통령이 “해일에 쓸려가는 장수를 붙잡으려고 허우적대다 놓쳐버린 심정”이라며 전임자의 불행을 안타까워 했으니 후임자로서의 적절한 처신이 쉽지 않았겠죠.

●고비 때마다 몸 낮춰

그러나 돌이켜보면 부총리는 정말 무색무취했다고 생각됩니다. ‘선진통상국가를 지향하는 합리적 시장주의자’로서 말할 때와 침묵할 때를 잘 헤아렸다고 본인은 강변할 지 모르나 경제의 큰 맥락이 바뀌는 고비 때마다 부총리는 몸을 낮추었습니다.

물론 그것이 조화와 실질을 추구하는 효율적 리더십이라고 말하면 딱히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국가경제를 총괄하는 지위에 어울리는 태도가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부총리는 지난 여름 어느날 “언론들이 제멋대로 써대니 이젠 칭찬성 기사보다 제대로 된 사실성 기사만 봐도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청와대와 총리실, 심지어 여당까지 나서 경기진단 재벌규제 부동산투기억제 등 주요 정책에 감 놔라, 배 놔라고 좌지우지한다는 지적에 대한 반론이었습니다. 하지만 한달전 경제 원로와 전문가그룹이 주최한 포럼에선 부총리의 리더십 부재를 노골적으로 질타했습니다. 모두 사공을 자처하고 나서니 우리 경제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는 얘기였죠.

부총리의 목소리가 높아진 자리가 한번은 있었습니다. 전경련이 주최한 하계 제주포럼에서 “기업이 수익모델을 찾지 못했거나 연구개발 의지가 부족해 투자를 안하면서 제도나 정책 탓만 한다”고 재계를 비판한 것이죠. 그러나 정부가 뭘 몰라도 한참 모른다는 냉소적 반응이 훨씬 많았습니다. 부총리 모처럼 마음먹고 던진 메시지를 이처럼 가볍게 여기는 시장 풍토는 이후에도 별로 개선된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 경제가 2년여에 걸친 침체 터널의 끝에 도달했고, 내년엔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을 회복하게 되지 않았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용과 질이 뒷받침되지 않는 양적 성장은 신기루와도 같은 것이어서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만 부추길 뿐입니다. 안도의 한숨을 쉴 때가 아니라는 얘기죠. 어느 대학교수는 “양극화로 치닫는 사회에선 평균이 아니라 분포를 봐야 올바른 정책이 나온다”고 하더군요.

정부도 양극화 문제의 심각성을 충분히 알고 동반성장의 기치 아래 중장기 대책을 강구중인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정책의 힘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노 대통령이 “한국의 어떤 두뇌집단도 명쾌한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고 지레 선을 그은 탓인가요.

●새해엔 분명한 비전을

역으로 다른 얘기를 하나 전하겠습니다. “비전만 명확하면 그걸 실천하는 방법은 충분히 있다. 예컨대 정부가 복지국가 건설을 급선무라고 인식하고 다른 정치적 사안에 쏟고 있는 에너지와 자원을 집중시킨다면 많은 성과를 거둘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복지국가를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않는 듯 에너지를 엉뚱한 곳에 소진하고 있다.” 노 대통령도 큰 관심을 보인 ‘쾌도난마 한국경제’에서 장하준 교수가 한 말입니다.

글이 왔다갔다 했습니다만, “홍보지침을 어기면 자리를 뺏겠다”는 정권 나팔수들의 으름장이나 정치바람에 흔들리지 말고 새해엔 전 계층에 온기를 불어넣는 분명한 비전을 보여주기 기대합니다. 그래야 ‘길게 보고 뚜벅뚜벅 걸어온 3년, 실천하며 또박또박 걸어갈 2년’이라는 구호가 비웃음을 사지 않을 것입니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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