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병행 투쟁" "칼 뽑은 이상 끝까지" 격론 끝
28일 사학법 투쟁방향을 최종 결정 짓기로 한 한나라당 의원총회. 의원들의 갑론을박이 끝난 뒤 박근혜 대표가 단상에 올랐다.
"사학법이 쓸데 없는 이념문제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대북 문제에서는 넓은 생각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를 북한에 잃었지만 그래도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고 온 사람이다." 순간 목이 메인 듯 박 대표가 고개를 숙였다.
1분간의 침묵. 소속 의원 127명 가운데 120명이 들어찬 의총장은 순식간에 무거운 정적으로 빠져들었다.
누군가가 박수를 쳤다. 이어 의원들의 호응의 박수가 이어졌다. 국회에 일단 등원하자는 당내 온건파의 이의제기를 잠재우는 순간이었다. 한나라당이 국회 포기를 결정하는 장면이기도 했다.
박 대표는 "우리가 가는 길이 옳은 길이므로 어떤 고난이 오더라도 힘을 합해 노력한다면 나중에 부끄럽지 않고 역사의 평가를 받을 것"이라며 발언을 마무리했다.
이날 의총에선 원내외 병행투쟁론도 다수 제기됐다. "사학법은 장기간의 투쟁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전재희 의원을 필두로 박형준 김명주 고진화 의원 등이 잇달아 "국회에 등원해 투쟁하자"고 주장했다.
박형준 의원은 "이제 투쟁의 1단계를 마무리하고 국회에 들어가 2단계 투쟁을 벌이자"고 했고, 김명주 의원은 "남편이 문제가 있더라도 아내는 자식부터 생각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안상수 심재철 박재완 배일도 주성영 의원 등은 "일단 칼을 뽑은 이상 끝까지 가자"고 반박했다. 박재완 의원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야 말로 상대방에게 진정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말했고, 배일도 의원도 "교육을 포기하지 않겠다면 들어가지 말자. 더욱 강경한 투쟁을 펼치자"고 목청을 높였다. 6대 4 정도로 강경론의 우세였다.
이어 강재섭 원내대표는 "국회가 며칠 남지 않았는데 들어가서 협상한들 무얼 하겠느냐"며 국회포기 방침을 천명했다. 그리고 박 대표가 갈등하는 의원들의 마음에 쐐기를 박았다.
이날은 한나라당이 회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하지만 이날 "계속 가자"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한나라당이 불참한 가운데 예산안이 처리되고, 내년 초까지 여야간 격렬한 대립이 계속되는 상황이 불가피해 보인다.
한나라당 내에선 "어차피 이렇게 된 마당에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날 오후 대전에서 열린 장외집회도 의원 50여명이 참석하는 등 어느 때보다 열기가 고조됐다.
하지만 이 같은 분위기가 해를 넘겨서도 유지될 수 있을지에 대해선 물음표를 다는 시각이 당 안팎에 많다. 한 당직자는 "투쟁을 계속 이끌려면 수위를 높여가야 하는데 마땅한 방법이 없어 고민"이라고 말했다.
■ 與 "저렇게 버티는데… 밀어붙일 명분 충분히 쌓았다"
열린우리당은 28일 한나라당이 빠진 국회 강행 방침을 분명히 했다. 민주ㆍ민노당이 불참해 개의하진 않았지만 소속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들어가고 운영위와 법사위도 단독으로 열었다. 동시에 한나라당의 장외투쟁을 비난하는 발언수위도 최대치로 올렸다.
우리당은 내년 예산안과 파병연장동의안, 부동산대책 후속입법 등의 주요 현안을 민주ㆍ민노당, 무소속 의원 등의 협조를 얻어 금요일인 30일 본회의에서 처리키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 한나라당이 끝까지 버티는데다 그간 반쪽국회를 밀어붙일 명분도 충분히 쌓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우리당 의원들은 이날 의원총회를 통해 인원점검을 한 뒤 오후 2시로 예정됐던 본회의 회의장에 일제히 입장했다. 언제라도 국회를 열겠다는 일종의 시위인 셈이다.
우리당은 특히 이날 법사위를 단독으로 열어 전날 재경위를 통과한 종합부동산세법 등 부동산대책 후속입법 등을 심의해 통과시켰다. 단독 소집한 운영위에선 본회의 의사일정을 의결했다. 30일 본회의 현안 처리를 위한 절차를 밟은 셈이다.
한편으론 한나라당의 장외투쟁을 맹렬히 비판했다. 정세균 의장은 의총에서 “박근혜 대표가 우리당이 여론조사를 조작했다는 등 허위사실까지 유포하고 있는데 애처롭다”며 “색깔론에 이어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흑색선전을 하는 구태정치를 중단하라”고 비난했다.
배기선 사무총장은 “사학법에 대해 한나라당이 신문광고 등을 통해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다”며 “법적 대응도 검토하겠다”고 몰아붙였다. 제1야당이 국회를 팽개치고있다는 예의 비난도 빼놓지 않았다.
우리당은 이제 30일 본회의에서 제1야당이 빠진 가운데 예산안 등을 처리하는 쪽으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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