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검ㆍ경 총수는 법으로 임기를 보장 받았다 할지라도 급박한 사회적 이슈가 터져 조직이 위기에 처하면 제 발로 물러나는 것으로 마지막 책임을 다했다. 이 때문에 ‘임기제 경찰청장’을 내세운 허준영 경찰청장의 ‘버티기’는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농민 2명의 사망사건으로 사퇴압력을 받고 있는 허 청장과 직접 비교가 되는 사례는 검찰에 있다. 이명재(2002.1.17~11.5) 검찰총장은 2002년 10월 서울지검 피의자 고문 치사사건의 책임을 지고 10개월 만에 옷을 벗었다. 그는 퇴임사에서 “검찰에 쏟아지는 모든 질책은 제 두 어깨에 모두 짊어지고 가겠다”고 밝혔다. 검찰사에 유례없는 고문치사사건의 여파는 당시 김정길 법무장관의 낙마로도 이어졌다.
최근엔 김종빈(2005.4.4~10.14) 검찰총장이 동국대 강정구 교수 사건에 대한 천정배 법무장관의 지휘권 발동 파문 속에 스스로 사직서를 냈다.
이밖에도 검찰 수장이 민감한 사건의 후폭풍을 견디지 못해 임기종료 전 사퇴한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1988년 검찰 중립을 보장하자는 취지로 검찰총장 임기제가 도입된 후 총장 13명 중 임기 2년을 채우지 못하고 중도 사퇴한 이는 8명이나 된다. 사퇴 이유는 ▦수사와 관련한 정치권과의 마찰(박종철 김기수 김각영 김종빈) ▦주변 비리에 대한 도의적 책임(신승남) ▦조직물의에 따른 대표 책임(이명재)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경찰청장 임기제는 검찰보다 늦은 국민의 정부 시절 도입됐다. 하지만 임기제의 첫 총수인 최기문(2003.3.21~2004.12.27) 경찰청장은 임기 3개월을 남기고 자진 사퇴했다. 당시 최 청장은 인사문제와 관련해 여권 핵심층과 불협화음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임기제 경찰청장은 아니지만 ‘장수 청장’으로 꼽히는 이무영(1999.11.14~2001.11.9) 경찰청장도 허 청장의 최근 행보와 비교된다. 이 당시 청장은 2001년 4월 대우차 폭력진압 논란 이후 거듭된 사퇴압력에 ‘버티기’로 일관했다. 하지만 그 해 11월 제주경찰청 정보보고 문건 유출 파문으로 교체됐다.
공교롭게도 이 전 청장과 허 청장은 경찰 내부에선 특유의 카리스마로 경찰 개혁을 진두지휘하는 선봉장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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