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된 영웅(또는 스타)의 초년 역정을 되돌아보는 일, 곧 승리(성공)의 감동을 예약해두고 떠나는 길은 안전하지만 싱거울 수 있다. 반면에 미완의 스타가 걷는 역경의 행로에 동행하는 일은 어디에 닿을지 알 수 없어 위험한 대신 모험처럼 설렌다. 거기에는 응원이 개입할 여지가 있고, 미래의 좌절과 실망, 감동과 성취에의 수많은 갈림길이 있기 때문이다.
윤도현밴드 유럽투어공연(2005년 봄)의 처음과 끝을 다큐 형식으로 찍은 영화 ‘온더로드, 투’가, 우리가 아는 기왕의 뮤직다큐 영화들-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이나 더 블루스, 레이 등-과 비교할 때, 영화의 완성도나 울림의 깊이와는 별개로, 우선 차별적인 이유다.
이 영화는 10, 20대의 거친 열정을 비틀즈와 레드 제플린으로 다독였던 한 젊은 영화감독(김태용)의 록에 대한 오마주이고, 록의 역사와 역사가 된 로커들에 대한 헌사다. 순치되지 않은 록 정신에의 갈망이며, “맨 땅에 헤딩”하는 자들의 도전적 패기와 인간적 동요, 그 거친 감정의 조경(潮境)을 가로지르는 자들에 대한 들뜨지않은 박수다. 그러니 이 영화의 주인공은, ‘윤밴’과 그들의 음악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그들의 투어공연은 영국의 신인 록 밴드 ‘스테랑코’와의 음악적 우정으로 시작된다. 영국과 네덜란드 독일 이탈리아로 이어진 한 달간의 조인트 투어, 2층 투어버스에서의 고단한 숙식, 썰렁한 공연장…. 영화는 이 동양의 무명 록 밴드가 몇 안 되는 관객들과 음악으로 교감하(려)는 과정을 여과 없이 이어간다.
투어 초반의 도도한 배짱은 환호가 사라진 무대를 거듭 마주하면서 풀 죽어 가고, 공연이 성사될 지 여부조차 불투명한 상황이 계속된다. 일행은 하루의 절반을 보낸 도로 위에서 기타 치고 노래하고 노래를 만든다.
상대의 눈빛과 음악에의 열정을 통해 서로를 다독이기도 한다.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으로 어둡고 낯선 도로를 열며 나아가던 그 심경과 풍경을 담아 만든 노래 ‘Darkness of the Highway’(고속도로 위의 어둠)는 영화의 전체 이미지와 맞물리며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영화는 끝까지 작은 고난과 작은 성공을 뻥튀기지도 폄하하지도 않는다.
‘윤밴’은 ‘스테랑코’의 리더보컬 ‘빅 리’이 투어 도중 제안한 ‘YB’(Why Beㆍ왜 존재하나)를 팀의 새 이름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그것은 그들의 음악적 초심(初心)과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확인에의 다짐이다. 그 질문과 확인의 주체는 ‘윤밴’이어도 좋고, 아니어도 좋을 것이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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