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1998년 처음 과학 분야를 담당하면서 황우석 교수를 만났고 그를 열심히 취재했다.
다른 분야를 거쳐 올 8월 다시 과학을 맡게 됐지만 그 사이에도 많은 취재원들에게 황 교수의 부지런함과 열정, 또 영롱이 탄생 당시의 감격을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다 최근 황 교수 연구에 대한 의혹을 집중취재하게 되면서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됐고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졌다.
하지만 난치병 환자들이 느낄 공황을 생각해 보면 기자가, 아니 일반 국민이 체감하는 정도는 작은 것일 수 있다. “PD수첩 검증 결과 2, 4번 줄기세포의 DNA가 환자와 일치하지 않았다”는 기사를 쓰면서 체세포를 제공한 환자들을 취재하려 했지만 사실 두려웠다.
실제 2번 줄기세포에 체세포를 제공한 12세 척수장애 소년은 아버지 김제언 목사에게 “그럼 난 이제 못 일어서는 거야?”라고 물었다고 한다. 소년이 느꼈을 절망을 누가 보상할 수 있을 것인가. 김 목사는 20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줄기세포는 없더라도 황 교수가 원천기술은 보유하고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대부분 환자들이 같은 심정일 것이다.
황 교수 팬카페인 아이러브황우석에 오른 글을 보면 논문 조작이나 철회 여부는 환자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줄기세포를 이용해 치료제만 만들 수 있다면 이번 논문 조작이 세계 과학계의 스캔들이 된 사실조차 괘념치 않는다. 중요한 건 줄기세포를 만들 수 있느냐는 것이고, 만들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자 역시 같은 고민을 했다. “황 교수팀이 연구를 열심히 한 것은 사실이다. 논문은 거짓이지만 노력은 했다. 그렇다면 황 교수팀이 계속 연구해서 성과를 내도록 돕는 것이 환자를 위해 할 일이 아닐까. 최소한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를 그만 써야 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또 다른 고민을 떨쳐내지 못했다. 거짓과 조작에 의한 줄기세포가 과연 정의롭게 쓰일 것인가? 거짓으로 발전한 과학이 환자를 제대로 도울까? 행복한 사회를 만들까?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기자는 판단했다.
난치병 환자의 다른 의견을 들어보자. 한양대 생명과학과 석ㆍ박사 통합과정을 밟고 있는 이현섭(30)씨는 파킨슨병 환자다. 그는 파킨슨병에 걸린 쥐에 배아ㆍ성체 줄기세포에서 분화한 신경줄기세포를 넣어 치료효과를 보는 실험을 한다. 인제대 생물학과를 졸업해 민간연구소에 들어간 그는 2004년 초 서울아산병원 등에서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후 “뭔가 해보자”는 생각에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이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2005년 황 교수의 사이언스 논문이 나왔을 때 공부를 하지 않고 있었다면 나도 헛된 희망을 많이 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관련 논문을 샅샅이 읽었고, 황 교수 말처럼 몇 년 안에 치료에 돌입할 수는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황 교수 사태가 언론을 장식할 때 나는 그저 연구에 몰입하고 싶었을 뿐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저렇게 연구를 허황되게 부풀리는 그룹도 밤낮없이 연구하는데 우리는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지도교수의 말을 마음에 새겼다.
이씨의 지도교수인 이상훈 한양대 의대 교수는 “최근 1~2년 사이 동물실험을 해 본 결과 줄기세포가 테라토마(기형종)를 만드는 등 부작용 사례가 많이 보고되고 있다”며 연구성과 부풀리기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는 “환자들에게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하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5년, 10년 후 걷게 해주겠다’는 식으로 환상을 심어줄 경우 오래 견뎌야 하는 난치병 환자에게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황 교수팀이 복제배아를 배반포 단계까지 만들었다 해서 줄기세포를 확립할 수 있다고는 그 누구도 단정하지 못한다. 더구나 조작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임상에 돌입할 수 있느냐는 더욱 회의적이다. 17개 난자에서 1개 줄기세포가 아닌 1,200개 난자에서 2개의 줄기세포를 만든 것이라면 임상 가능성은 전혀 달라진다. 부정직한 연구가 결코 희망이 될 수 없는 이유다.
줄기세포 연구는 계속돼야 한다. 다만 헛된 환상이 아닌 진정한 희망을 주는 연구여야 한다. 황 교수 사태로 우리 사회는 ‘진정한 희망’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오랜 시간을 버텨야 하는 환자들에게 정확한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 연구성과 과장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아직 연구시설에 불과한 세계줄기세포허브가 마치 치료시설인 양 2만명의 환자가 등록하도록 한 게 얼마나 큰 잘못이었는지 모두 알게 됐다. 환자들의 꿈은 사라지지 않았다. 미래의 절망이 사라졌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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