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혁당 사건에 대한 법원의 재심 결정은 사법부의 적극적인 과거사 정리 의지를 실천한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인혁당 재건위원회 사건은 유신 시절 비상군법회의를 거쳐 대법원에서 관련 피고인 8명의 사형이 확정된 지 18시간 만에 형을 집행, 대표적 ‘사법 살인’이란 비난이 이어졌다.
사법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긴 사건을 30년 만에 다시 다루기로 한 것은 사법부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가 어두운 과거 유산을 청산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 사건은 유족들에게 치유할 수 없는 상처와 원한을 남겼을 뿐 아니라, 사법부에도 과거의 어떤 행적보다 번민을 안겼을 것이다.
적법 절차와 법적 안정성을 내세워 재심 요구를 외면했으나 갈수록 거세지는 비판이 과거 오욕의 기억을 거듭 되살린 때문이다. 이제 그 원한을 씻어주고 스스로 괴로움을 떨치는 길을 택한 것은 지혜로운 결단이라 할만하다.
이 사건은 이미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국정원 과거사위원회가 국가권력이 조작한 사건으로 규정한 바 있다. 여기에 이용훈 대법원장이 적극적인 과거 반성을 다짐함에 따라 사법부의 전향적 판단이 기대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재심에 따르는 여러 우려를 무릅쓰고 이 사건 수사과정의 고문 등 가혹행위가 입증된 것을 재심사유로 인정한 것은 인권보장의 보루로서 소임에 충실하려는 의지를 실천한 것으로 평가한다.
이번 결정에 따라 다른 과거사 사건의 재심 요구가 잇따를 것이다. 재심 사유를 한층 폭 넓게 해석하고 법률상 재심요건을 완화하라는 요구도 커질 것이다.
그러나 사법부의 과거 반성과 인권옹호 노력은 법 원칙에 확고하게 기초해야 한다. 반세기가 넘어 증거자료 등이 없거나 정치적 논란이 많은 사건까지 거론하는 것은 과거 청산을 혼란스럽게 할 뿐이다. 사회 전체가 신중하고 진지하게 접근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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